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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만드는 사람들 (2017. 3. 3.)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7-03-02 (목) 22:58 조회 : 105

우리 조상들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되면 매화나무에 꽃봉오리 81개를 그려 창문에 붙여놓고 하루 한 송이씩을 붉은색으로 칠했습니다. 9일마다 추위가 누그러지기를 아홉 차례, 곧 81일간의 기다림이 끝나고 창문에 붙여 놓은 하얀 매화 송이 전체가 붉은 매화 송이로 물들 때쯤, 창문을 열면 창밖에는 어김없이 진짜 매화가 붉게 피어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고 부르며 긴 겨울의 무료함을 달랬습니다. 동짓날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하루 한 송이씩 붉게 물들이던 매화 송이가 온통 붉게 될 때면 3월 10일경이 됩니다. 절기로는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놀라 깬다는 경칩(驚蟄)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 중간 정도쯤 됩니다. 이때가 되면 산천초목의 푸르름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저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의 기지개를 켜며 봄의 기운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조상들은 구구소한도의 붉은 매화를 절반쯤 물들인 2월 초에 '봄이 들어선다'는 뜻을 담아 '입춘(立春)'이라는 절기를 두었습니다. 올해 캘리포니아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겨울이 없는 캘리포니아지만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비와 함께 온 스산함이 마치 긴 겨울을 지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스산함을 날씨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정치적 혼란 소식과 미국에서 새롭게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뉴스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민자들을 쫓아내고, 장벽을 건설하고, 출입을 통제한다는 정책들이 가뜩이나 스산한 날씨와 맞물려 우리의 마음을 더욱 차갑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아직도 추위가 한창인 2월 초를 '입춘'이라고 정하고 믿음의 눈으로 봄을 맞이했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먼저 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봄은 생명의 계절입니다. 봄은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봄은 신비가 충만한 계절입니다. 봄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Spring'에는 '봄'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샘'이라는 뜻도 있고, '솟아오른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 날씨만 따뜻해지는 때가 아니라 '솟아나는 샘'과 같이 생명을 살리고, 갈증을 달래주고, 기운을 북돋는 계절입니다. 입춘이 되었을 때 한 해의 소망을 담아 대문이나 집 기둥에 붙이는 글을 춘첩자(春帖子)라고 합니다. 춘첩자로 가장 많이 쓰이는 글귀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입니다. '입춘대길'은 "봄이 들어섰으니 크게 길한 일이 집안에 가득 하라."는 뜻으로 우암 송시열 선생의 말씀입니다. '건양다경'은 "양의 기운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때이니 좋은 일이 집안에 가득 하라."는 뜻으로 미수 허목 선생의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런 글귀를 붙여두고 봄의 기운으로 한 해를 힘차게 살기를 소원했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세상의 봄은 저절로 오지만, 삶의 봄은 만들어야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해 맞이하는 봄이지만, 봄은 한 번도 그 시간을 어긴 적도 없고, 오겠다는 약속을 깨트린 적도 없이 저희 곁을 찾습니다. 계절의 봄은 일 년에 한 번 밖에 오지 않지만, 삶의 봄은 언제든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우리는 삶의 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삶의 봄은 추운 겨울을 지날 때 그 추위를 이기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봄은 소망입니다. 봄이 소망인 까닭은 그 안에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어붙은 가지에 새잎을 돋게 하는 것도, 작은 씨앗 속에 숨어있던 싹을 트게 하는 것도 봄이 가진 신비입니다. 신앙인은 봄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봄을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봄의 따스함으로 세상을 살피고, 봄의 향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사람이야말로 봄을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영혼의 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시작됩니다. 예수 안에서 누리는 봄, 말씀과 은혜의 촉촉함 속에 생명의 움을 피우는 영적인 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봄, 신앙의 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아니 봄을 맞이하기 전에 그런 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그 시간이 바로 "내 인생의 봄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김흥호는 "자연은 봄이 와야 꽃을 피우지만, 인생은 꽃을 피워야 봄이 온다."라고 했습니다. 자연의 꽃은 시간이 되어 봄이 오면 피지만, 인생의 꽃은 마음을 먹어야 피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열고 인생의 꽃을 피울 때 인생의 봄날은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의 향기를 물씬 풍기므로 봄을 만들어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올 것입니다. 계절의 봄이 오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우리들의 영적인 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아름답고 풍요로운 인생의 봄날을 소중히 만들어 가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