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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는 알고 있었다. (04162017)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7-04-15 (토) 11:44 조회 : 111

()청이는 알고 있었다

“고전이란 누구나 읽은 것으로 자부하려 하지만 실은 누구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제목을 알고 있는 고전들은 많지만 제대로 읽은 책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고전 중의 하나가 “심청전”입니다

 

심청전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심 봉사는 곽 씨 부인과 혼인하여 아이를 낳았지만 곽 씨 부인은 딸 청이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죽고 맙니다. 심 봉사는 어린 청이를 업고 젖동냥을 해서 키웁니다. 하루는 일 나간 청이를 마중 나갔다가 웅덩이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구해 준 사람이 어느 스님이었습니다. 그 스님은 쌀 삼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심 봉사에게 말합니다. 그때부터 심 봉사는 쌀 삼백 석을 노래하고 다녔습니다. 효녀인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청나라 배에 몸을 팔아 쌀 삼백 석을 몽은사라는 절에 시주했습니다. 심청은 청나라 배에 실려 가다가 인간 제물로 바다에 던져졌고 심 봉사는 공양미 삼백 석을 갖다 바쳤지만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오히려 뺑덕어멈이라는 악처를 만나 고생만 하고 삽니다. 한편, 물에 빠진 심청은 용왕을 만나 연꽃을 타고 세상으로 나와 임금님께 바쳐져 왕비가 됩니다. 왕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봉사들을 위한 잔치를 열었고 결국은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 심 봉사가 눈을 번쩍 뜨게 된다는 희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서론이 길었지만, “심청전”은 가히 복음서 수준입니다. 진리의 눈을 뜨는 과정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양미 삼백 석이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그것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학위나 지위, 영주권이나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심청전”에서 볼 수 있듯이 공양미 삼백 석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자신을 위해 바다에 몸을 바친 딸 심청의 숭고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심청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한 회복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시고 다시 사셔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그 은혜로 천국에 이르는 복음의 진리를 찾게 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심 봉사와 같이 헛된 것으로 눈을 뜨겠다고 헤매는 우리가 만나야 할 참된 구주이십니다.

 

"심청전"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은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이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왕비가 된 후 아버지를 찾는 방편으로 소경을 위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공양미로 눈을 떴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다른 방법으로 찾았을 것입니다. 공양미 삼백 석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지 못하게 될 줄을 알면서도 자신을 희생할 세상에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니 하다 보면 되리라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고 희생입니다. 사랑과 희생은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일을 통해서 은혜를 누리고 생명을 얻고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 때문에 진리를 발견하게 되리라고 생각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꾸짖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면서 끝까지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부활절을 맞으면서 심청전을 떠올린 것은 평생 공양미 삼백 석을 노래하며 살았던 심 봉사의 모습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편 기자의 고백(시편 90:13)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세상의 분주함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의 마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희생을 딛고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부활주일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 길밖에 없었기에 자신을 드렸고, 결국 그 희생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 되어 심청이의 효심이 보상받은 것처럼, 십자가의 길밖에 없었기에 그 길을 걸으셨지만 결국, 부활하시므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부활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헛된 것을 향한 야망을 거두고, 묵묵히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