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나님, 고난의 바다 위에서 본 별빛"
3년 전,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하기로 결정된 후 교회 주소록을 통해 교우들의 얼굴을 미리 익혔습니다. 교회 주소록에는 연합감리교회에서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도 계셨고,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여러 행사를 통해 뵌 낯익은 얼굴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이 사는 지역은 참 다양했습니다.
LA 한인타운 인근과 사우스베이 지역, 웨스트 LA 쪽에 많이 살고 계셨지만, 남쪽으로는 플러턴, 세리토스 인근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월넛, 치노 힐스, 아케디아 등에서 오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북쪽으로는 아고라 힐스, 노스리지 등 밸리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도 여럿 계셨습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교회에
오신다고 생각하며 주소록을 들추다가 다른 주에 계신 교우가 주소록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앨라배마 그린빌(Greenville, AL)이 그분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소가 잘못 나온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LA연합감리교회 장로님으로 사업 때문에 앨라배마에 거주하시는 김죽봉
장로님과 김영수 권사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진으로 낯을 트고 교회에 부임해서는 전화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김 장로님 내외분이 일 년에 한두 차례 LA를 방문하실 때마다 같이 예배드리고 식사도 하면서 교우와 목사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지난해 말, 김 장로님께서 책을 한 권 보내오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고난의 바다 위에서 본 별빛"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교회 장로님이 쓰신 자서전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미국에서 열심히 살아온 한 이민자의 이야기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몇 장 읽다가 다음에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는 늦은 밤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고향 함경도 이평에서 마주한 별빛은 그의 인생의
전주곡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여름이면 온 동네를 뒤덮는 반딧불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었고, 가을이면 수많은 별이 머리 위에 총총하고, 개마고원의 좁은 하늘을 가득 메운 은하수가
어둠을 헤치는 빛이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한국전쟁의 비극
앞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는 1950년 12월, 국군으로 입대하여 흥남부두를 출발해 묵호를 향하는 피난선 메러디스 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을 향하는 피난선, 정원 2,000명에 14,000명을
태울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맞이한 밤하늘은 어두웠습니다. 구름에 가린 별빛은 시대의
암울함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후, 그의 삶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별빛에 담긴 꿈이 그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동경과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프레즈노에 도착했을 때, 그의 손에는 1불 75센트만 남아 있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해서 맞이하는 첫날 밤, 잠자리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았습니다. 함흥 정치보위부 지하 감방에서 있었던 학살에서 혼자 살아남았던 그였습니다.반룡산 전투를 비롯한
살벌한 전쟁터에서 숱한 죽음의 고비에서도 끝내 살아남았던 그였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별빛을 보았습니다. 그 별빛은 고난 속에서 더 반짝이는
별빛이었습니다. 그 별빛은 하나님의 현존이었고, 약속이었고,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삶의 고비마다 만남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만남을 통해 은행 일을 시작하였고, 만남을 통해 무역의 길이 열렸습니다. 사업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만남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김죽봉 장로님의 자서전은 성공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천심을 지키라"는 그의 어머니의 당부와 기도 가운데 살아온 한
신앙인의 담백한 고백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그의 삶은 영화 같은 긴박한 사건의 연속이지만, 결국 그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간절한 고백으로 끝을 맺습니다. 자서전을
쓴 이는 김죽봉 장로님이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김죽봉 장로님의 자서전 출판 감사예배를 오늘(3월 18일) 오후 3시 30분에 교회에서 드립니다. 함께 신앙의 길을 걷는 신앙의 한 동료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자리입니다. 그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이 멋진
예배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