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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감이 홍시로 변하듯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12-08 (토) 14:49 조회 : 125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수요일 저녁이었습니다가뜩이나 해가 짧아져 일찍 어두움이 깔리는데쌀쌀해진 날씨에 겨울비까지 내리는 수요 예배 시간은 이미 꼼짝달싹하기 싫은 한밤중으로 변해 있었습니다예배만 없었다면 방에 전기장판 깔고 이불 뒤집어쓰고 가족이 둘러앉아 군밤을 까먹든지국수를 말아 먹든지아니면 부침개라도 부쳐 먹으면 딱 좋을 날씨였습니다수요 예배를 시작하면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교회 가지 말고 집에서 쉬면 딱 좋은 날씨잖아요저도 목사만 아니었다면 오늘 같은 날 교회 오기 싫었을 것 같은데 여러분들 참 대단하십니다목사도 아닌데 교회에 와 앉아 계시잖아요."

그렇게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찬송을 부르며또 기도를 드리며 예배를 준비하는데 질문이 하나 생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같은 날 왜 교회에 오는지 아느냐?'고 하나님께서 묻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야 수요 예배 시간이니 당연히 교회 와야지요.' 스스로 대답은 했지만수요 예배라고 당연히 교회에 와야 한다는 답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게 느껴졌습니다물론수요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믿음의 표현이고그 시간에 기도하고찬양하고또 말씀 들으면서 신앙을 정진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그렇다고그 시간에 꼭 교회에 와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안 온다고 벌금을 물리는 것도 아닐 것이고또 교회에 왔다고 해서 특별한 은혜가 임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수요 예배 시간에 교회에 와서 앉아 계신 분들이 더욱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그분들의 믿음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그 생각도 '오늘 같은 날 왜 교회에 오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럼 뭐지?' 나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처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제 마음을 채웠습니다. '내가 기다리잖아.' 바로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 온다고 생각합니다내가 찾아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런데아니었습니다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고 계셨습니다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뵙는 자리가 예배의 자리입니다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언제나 우리보다 앞서가시는 주님을 좇아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수요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찬양팀과 사역자들을 위한 소박한 식탁이 차려졌습니다김치찌개와 밥과 김이 전부지만겨울 저녁 풀죽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습니다후식으로 나온 감도 얼마나 달던지 한 접시 그득 담긴 감을 보고는 인사치레로 한두 개만 집으려던 마음은 어느새 오가는 손길로 변했고 감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제철을 맞은 감을 보면서 가을이 지나고 있음을 느낍니다늦가을 앙상한 가지에 잎사귀마저 훌훌 털어버리고 서리와 눈을 맞으면서도 붙어 있는 열매가 감입니다여름 볕을 지나벌레를 이기고비바람과 싸우며 서리와 눈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킨 감이 홍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시인 이재무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름 땡볕/옳게 이기는 놈일수록/떫다/떪은 놈일수록/가을 햇살 푸짐한 날에/단맛 그득 품을 수 있다/떫은 놈일수록/벌레에 강하다/비바람 이길 수 있다./덜 떫은 놈일수록/홍시로 가지 못한다/둘러보아도 둘러보아도/이 여름 땡볕 세월에/땡감처럼 단단한 놈들은 없다/떫은 놈들이 없다.

시인이 노래했던 떫은맛은 시대를 향한 반항의 표상입니다적당하게 살아가려는 기성에 대한 일침입니다세상과 타협하며 안일하게 살아가려는 종교인의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입니다치열한 구도자의 길을 포기하고 값싼 은혜와 풍요만을 추구하는 교회를 향한 풍자의 메스입니다.

달콤한 맛으로 세상의 인기를 끌기보다떫은맛으로 세상의 유혹을 견뎌낸 땡감이 홍시로 변한다는 결말은 우직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려는 신앙인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못난 모습이 때로는 신앙을 지켜온 힘이 될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합니다세상의 손길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는 인생이 아니라꼿꼿이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을 볼 때 숙연한 마음이 듭니다땡감이 홍시로 변하듯 우리 모두 우직하게 믿음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꾼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