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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돋는 밥상'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12-22 (토) 10:56 조회 : 111

"어제는 웬 손님이 그렇게 많이 왔어요?" 앞집에 사시는 한국 분이 물었습니다. "교회 속장님들 속회 인도자님들 모임이 저희 집에서 있었습니다." "잘했네. 그렇지. 교회는 자꾸 모여야지 그게 좋은 거요." 앞집 장로님은 그 말과 함께 과일 한 상자를 건네주고 가셨습니다.

지난주일 목사관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한 해 동안 속장으로 또 속회 인도자로 수고하신 분들을 초청해서 저녁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말 같습니다. 40여 명이 촘촘히 앉아 식사하고 교제했습니다. 한 해 동안 속회를 이끌면서 누렸던 감격도 이야기했고, 속장으로 또 속회 인도자로 헌신하면서 받은 은혜도 간증했습니다. 속회원들 가운데 어려운 형편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속장으로 또 속회 인도자로 섬기는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작은 선물도 나누면서 격려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한 가족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안”이라는 말은 세계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인사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계세요”와 같이 사용됩니다. 미국에서는 “Good Morning(좋은 아침)”이라는 말처럼 ‘좋은’이라는 말로 평안을 기원합니다. 한국 사람은 어떻게 해야 평안한지 그 이유까지 생각해서 묻습니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 잠 잘 자면 평안하고, 밥 잘 먹어야 평안한 삶이라고 우리 조상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밤새 안녕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먹는 것이 주된 관심거리가 될 만큼 먹고 살기 어려웠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인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 사람입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주린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 식탁에서 식사를 같이할 때 한 가족이 됩니다. 그래서 가족을 뜻하는 또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는 말을 씁니다. 말 그대로 ‘밥을 나누어 먹는 입(사람)’이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가족(家族)’은 결혼이나 핏줄로 연결된 사이지만, 한 집에 거주하면서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식구도 가족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예수님은 가족의 정의를 새롭게 쓰셨다고 했습니다. 핏줄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머무르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가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과정을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라는 철학적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기존의 ‘지역’이라는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서(탈영토화), ‘하나님의 뜻’이라는 새로운 가족의 범위를 정하셨다(재영토화).”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을 식구로 맞으셨습니다. 배고픔에 지친 무리를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제자들과는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제자들을 위해 아침 밥상을 차리시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식사할 때 그들은 예수님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밥상은 ‘북돋는 밥상’이었습니다. ‘북돋는’이라는 말은 용기를 주고 힘을 주고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굶주림에 지친 군중에게 예수님의 밥상은 용기와 위로의 밥상이었습니다. 믿고 따르던 스승을 잃은 제자들을 위해 차려 놓은 아침 밥상은 기운을 불어넣는 ‘북돋는 밥상(Meal of replenishment)’이었습니다.

‘북돋는 밥상’은 예수님만 차리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 밥상을 차리며 살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나누는 한 끼 식사는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북돋는 밥상'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나누는 밥상은 한 주간의 삶을 위로하고 또 다른 한 주의 삶을 응원하는 '북돋는 밥상'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와 식사를 같이 할 때 그 밥은 고픈 배를 채우는 끼니의 의미를 넘어선 위로의 ‘북돋는 밥상’입니다.

지난주일 목사관에 모여 나눈 식사야말로 '북돋는 밥상'이었습니다. '속회'라는 작은 교회를 위해 속장과 속회 인도자로 헌신하시는 분들이 함께 모여 위로받고 격려받는 '북돋는 밥상'이었습니다.

한 해 수고하신 속장님과 속회 인도자님들 그리고 속회의 일원으로 수고하신 모든 속회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각 속회로 모일 때마다 용기를 주고, 소망을 주는 '북돋는 밥상'이 차려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