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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의 자리에서"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9-04-20 (토) 12:40 조회 : 153

목사이기에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때가 많습니다. 설교하고, 속회나 성경 공부도 인도하고, 때때로 부흥회나 세미나를 인도할 때도 있습니다. 의견을 모으는 회의에 참여하거나 인도할 때도 있습니다. 교우들이 삶 속에서 마주하는 뜻깊은 시간과 함께할 때도 있습니다. 기쁨의 자리는 물론, 슬픔으로 가득한 마음에 슬그머니 찾아가 위로를 넌지시 건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떨림을 경험합니다.

지난주에도 저는 여러 차례 떨림의 자리에 서야 했습니다. 윌셔 연합감리교회에서 창립 40주년을 맞아 이웃 교회의 목회자들을 초청해서 하루씩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토요일 저녁 부흥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한 교회가 세워져 4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이민자들의 영혼을 돌보는 안식처의 역할을 잘 감당해 온 것을 축하하고 또,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복된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는 영예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감당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그것도 생방송에 나갔습니다. 다음 주일에 있을 "창립 115주년 기념 음악회" 홍보를 위한 방송이었습니다. 생방송이라기에 부담되어 어떻게든 빠지려고 했는데, 방송 시간이 한 시간이나 되고, 기념 음악회뿐 아니라 교회 역사와 비전에 관해서도 담임목사로서 꼭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에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자리에 나가야 했습니다.

시그널 음악이 나가고,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가 이어지면서 생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 마이크를 앞에 두고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떨렸습니다. 곳곳에서 라디오를 듣고 계실 청취자들을 생각하니 더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나운서의 차분한 진행과 경험 많은 준비위원들의 도움으로 생방송을 무사히 마쳤고, 방송국을 나올 때는 떨림이 안도의 숨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지난 한주간 고난 주간을 맞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단을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쫓다가 그 옆을 스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권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름없는 제자, 그리고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비겁한 빌라도도 만났습니다. 이들 네 사내의 마음이 떨렸을 것입니다. 그 떨림은 배반과 부인, 비겁함을 향해 소리치는 양심이 일으킨 갈등의 흔들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옆을 지키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이 네 여인이 서 있던 자리도 떨림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네 여인의 떨림은 네 남자의 떨림과는 차원이 다른 떨림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통이 이들 연약한 여인들의 몸과 마음에 전해졌기에 이들은 영혼까지 떨렸을 것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시는 예수님의 애절한 음성이 이들의 마음을 떨리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온 인류의 구원이 완성됨을 아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위대한 사랑 앞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덤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앉은 천사가 증언하는 부활의 소식을 들었을 때, 여인들은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떨림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통해 영적인 어울림이 만들어내는 떨림을 경험합니다. 그 떨림은 조금 더 잘해보겠다는 긴장감으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 자신을 먼저 비춰볼 때 마주치는 부끄럼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입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자리한 결혼, 입학, 졸업, 개업, 은퇴, 성공, 질병, 사고 등 각종 기념과 기억의 자리에 설 때마다 느끼는 떨림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앞에 선 인간이 자신의 한계 속에서 경험하는 어쩔 수 없는 흔들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떨림도 경험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영적인 감동을 잃어버린 채 무감각해진 우리의 영혼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떨리는 우리의 마음이 부활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양의 울림이 되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