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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클레이(Maclay) 선교사와 셔먼(Sherman) 여사를 만나러 갑니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9-08-10 (토) 13:30 조회 : 34

흔히들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해를 1885년이라고 합니다. 감리교에서 파송한 아펜젤러 선교사와 장로교에서 파송한 언더우드 선교사가 일본을 거쳐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디딘 1885 4 5, 부활절을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날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리교회는 역사적으로 조선 선교의 시작을 1885년이 아니라 1884년으로 지켰습니다. 1934 6 24일 감리회는 배재학당에서 '조선 기독교 50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해를 1884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전파된 해를 1884년으로 보는 이유를 살피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미국은 조선에 공사를 상주시켰지만, 아직 미국에 주미 공사를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았던 조선은"보빙사(報聘使)"라는 이름의 사절단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보빙사'는 '초대에 보답하는 사절단'이라는 뜻입니다. 민영익을 단장으로 한 이 사절단은 조선에서 미국 등 서방 세계에 파견된 최초의 외교 사절단이었습니다. 1883 7 15일 제물포항을 출발해 두 달간의 항해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보빙사는 기차를 타고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D.C로 이동했습니다.

이들이 탄 기차에 가우처(John F. Goucher)라는 미국 감리교 목사가 탔습니다. 볼티모어 시내의 한 감리교회의 목사였던 가우처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조선 사람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통역을 통해 민영익과 대화를 하면서 조선 선교의 가능성을 확신하였습니다

가우처는 1883 11 6일 뉴욕에 있는 감리교 해외 선교부에 조선의 사정을 설명하는 편지와 함께 선교기금 2천 불을 보냈습니다가우처는 감리교 기관지에 조선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을 15회 이상 연재케 하여 선교 기금을 모았고 그 기금이 밑거름되어 감리교 해외 선교부는 조선 선교를 위해 당시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던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조선을 방문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맥클레이 선교사는 1884 6 24일 김옥균을 통해 고종의 선교 윤허를 요청했고, 7월 2일, 조선에서 병원과 학교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윤허를 전달받음으로 조선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물론, 고종이 맥클레이 선교사의 요청을 수락한 배후에는 보빙사의 보고가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 윤허를 바탕으로 1885 4 5일 부활절 아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항에 발을 디디므로 조선의 선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보빙사(報聘使)가 가우처를 만나고가우처의 요청으로 감리교 해외 선교부가 맥클레이를 통해 고종을 만나 선교 윤허를 받아내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조선과 우리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엄밀하게 따지면 조선 선교의 문을 연 최초의 선교사는 맥클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1884년을 기독교가 들어온 해로 삼고 1934년 6월 24일 '조선 기독교 50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맥클레이 선교사는 미국에 돌아와서 동생과 함께 LA 북부에 맥클레이 신학교를 세우고 학장으로 사역하다 1907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그가 세웠던 신학교가 미 서부 최초의 신학교이자 지금의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입니다그의 무덤은 LA 한인타운 인근 워싱턴과 노르망디 코너에 있는 로즈데일 공원묘지(Rosedale Cemetery)에 있습니다.

이번 토요일(8월 11일)에 교회 창립 115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한국 선교의 문을 연 맥클레이 선교사님의 묘소를 방문하는 '역사 탐방'을 합니다. 한국에서 오신 이덕주 교수님께서 이번 '역사 탐방'의 길잡이가 되어 주십니다. 특별히 로즈데일 공원묘지에는 우리 교회를 시작한 셔먼 여사의 묘소도 있습니다.

조선 선교의 문을 연 맥클레이 선교사님과 미 본토 한인 교회를 처음으로 시작한 셔먼 여사의 묘소를 방문하면서 이 신비한 일을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맥클레이 선교사님이나 셔먼 여사가 무슨 생각으로 조선 땅을 밟았으며, LA에 있는 한인들을 섬기기 시작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였을 것입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했습니다.

이번 '역사 탐방'을 통해서 만나게 될 두 분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했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아니 그 사랑은 그분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준 맥클레이 선교사님과 셔먼 여사를 찾아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이번 역사 탐방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