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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위장 취업 중"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1-03 (금) 11:51 조회 : 153

한때 위장 취업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경제 부흥이 한창이던 시절, 노동자의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 19701113일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그의 짧은 외침은 긴 메아리로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던 노동 현장이 학생, 지식인층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 졸업자나 재학생들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노동 현장에 취업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이력을 속이고 노동 현장에 들어간 이들은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찾아주겠다는 일념으로 위장 취업을 정당화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 시대가 열렸습니다. 더는 위장 취업을 통한 노동 운동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가끔 위장 취업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대신 위장 취업하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노동 운동을 위한 위장 취업이었다면 이제는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기 위한 편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한 달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내야 하는 사람들이 위장 취업으로 몇천 원에서 몇만 원만 내고 의료 혜택을 보는 일이 잦았습니다.

 

또 남의 것을 훔치기 위해 위장 취업하는 사례도 적발되었습니다. 파출부로 들어가 일하는 가정의 귀중품을 훔치고, 음식점 배달부로 취업해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나는 등 절도를 위한 위장 취업자가 늘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위장 취업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몇 년 전 TV에서 유쾌한 위장 취업 이야기가 방영되었습니다. 미국의 CBS 방송에서 언더커버 보스(Undercover Boss)”라는 이름으로 방영한 프로그램입니다. 유명 기업체 최고경영자들이 구직자로 위장 취업해 말단 직원들과 똑같은 일을 하며 겪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써브웨이, 세븐일레븐, 프런티어 항공, 초이스호텔, 나스카 등 세계적인 기업체의 최고경영자들은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는 '밑바닥 일'을 하면서 회사를 위해 애쓰는 직원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애환을 듣고 회사가 나아갈 길을 찾는 생생한 이야기가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평소 회전의자에 앉아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고, 자가용 비행기나 고급 승용차로 이동하던 회장님들은 일이 서툴다고 구박을 받고, 자식뻘 되는 직원에게 혼쭐이 나면서 쩔쩔맸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피날레는 회장님과 함께 일하던 직원을 회장실로 초청하는 장면으로 장식됩니다. 영문도 모른 채 회장실에 들어온 직원들에게 회장님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깜짝 선물을 줍니다. 어떤 회장님은 2살 된 딸을 키우며 어렵게 일하는 여성 매니저에게는 자녀의 대학 학자금으로 쓰라며 7,500달러를 주었습니다. 동생 4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20살 난 필리핀계 이민자에게는 경제적 여건 때문에 떨어져 살아야 하는 부모님을 모실 수 있도록 15,000달러를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기 이름으로 된 사업체 경영을 꿈꾸는 라틴계 이민자에게는 몇만 달러를 줘 자신의 가게를 열도록 도왔습니다. 일이 서툴다고 면박을 주던 새내기 종업원이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최고경영자라는 사실에 놀라던 이들은 회장님이 주는 깜짝 선물에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의 눈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물론, 자신이 받은 보너스 때문에 감동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자식을, 부모를, 미래를 책임져 주는 회장님의 따스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방송을 보다 제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제 아내는 남자가 찔끔거린다고 핀잔을 놓았지만 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위장 취업 중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땅에 위장 취업하신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위장 취업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로 나신 날을 축하하는 성탄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위장 취업하신 날입니다. 회장님의 위장 취업과 깜짝 선물에 직원들이 감격했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위장 취업을 통해 주신 생명이라는 선물에 감격할 차례입니다.

 

예수님을 맞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위장 취업 중이십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위장 취업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겸손히 맞이하는 이 성탄의 계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