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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내드립니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1-03 (금) 11:53 조회 : 142

"목사님 요즘 많이 힘드시죠?" "목사님 너무 바쁘셔서 어떡해요!" 연말을 맞으면서 요즘 제가 교우들에게서 주로 듣는 인사입니다. 그 인사에는 연말을 맞아 교회 일과 여러 행사로 인해서 분주한 저를 걱정하시는 마음도 담겼지만, 올 연말 연이은 장례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저를 보자마자 눈을 돌리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계면쩍게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2월 들어 3주 내리 장례 예배를 집례해야 했습니다. 물론, 장례 전과 후에도 목사에게는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병원에 심방하는 일, 임종 예배를 드리는 일, 가족을 위로하는 일, 장례 절차를 정하는 일, 그리고 장례 예배를 집례하고, 장례가 끝난 후에는 가족들의 텅 빈 마음을 하늘의 소망으로 채우는 일도 해야 합니다.

 

인간이 살면서 마주하는 여러 형편 중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는 일만큼 크고 두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죽음을 향해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더는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죽음 앞에 선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외로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고 천국을 바라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그 믿음이 세상에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랑하는 이들에 향한 아쉬움까지 달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는 숨길 것도 없는 그 시간, 더는 미룰 수도 없는 그 시간에 목사는 마지막 순간을 맞는 이들의 마음속 깊이 찾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그 일은 저에게도 큰 부담입니다. 임종을 맞는 한 인생을 찾아가 삶에 대한 의지를 북돋는 것과 동시에 천국에 대한 확신도 심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한없이 미루고만 싶은 죽음을 곧 마주해야 할 현실로 확인시키는 일도 목사의 일 중 하나입니다.

 

함께 신앙 생활하던 교우들의 죽음을 대할 때마다 목사인 저도 큰 상실감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들이 느끼는 슬픔, 교우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감정적 피로가 몰려오고 육체적 탈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은 목사로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짐입니다. 하지만, 그 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할만큼의 큰 영예가 목사에게 주어집니다.

 

한 인생을 마무리하는 자리에 증인으로 서는 것이야말로 목사가 아니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가족들과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혹은 교회 소식지나 기록된 삶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이 땅에 잠시 머물다 떠난 인생을 말씀에 비추어 해석해내는 과정이야말로 목사가 누리는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더구나 고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희생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삶으로 실천한 믿음의 모습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입니다.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같이 밥 한 끼 먹는 그 시간이, 주일 아침 교회에 나와 함께 예배하는 그 시간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때로는 병원에 있는 그 시간조차도, 고통 가운데 잠 못 이루는 그 순간조차도 생명이 있기에 누리는 축복이라는 것도 죽음을 통해 배우는 지혜입니다.

 

시인 정진규는 ''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시인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면 생명의 바탕은 죽음이 마땅합니다. 어둠을 바탕으로 별이 빛나는 것처럼 죽음을 바탕으로 생명이 빛나기 때문입니다. 해가 떠오르면 찬란하게 빛나던 별들이 숨어버리듯이 인생도 때가 되면 생명이 빛을 잃고 죽음이라는 바탕의 한 쪽으로 숨어들 뿐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알고 지내던 이를, 오랫동안 함께 교제하던 이를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만남이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과 희망을 품고 우리 곁을 먼저 떠나는 당신을 보내드립니다.

 

우리가 보내드려야 하는 대상은 죽음 곁으로 간 이들만이 아닙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졌던 2019년이라는 시간도 보내드려야 합니다. 한 해 동안 우리의 마음을 애끓게 했던 후회와 눈물도 보내드릴 때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다시 만날 소망으로, 지나는 시간의 아쉬움은 다가오는 시간의 설렘으로, 한 해 동안 흘린 눈물은 새로운 해에 부어주실 축복과 함께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한 당신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