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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오늘’이 만들 ‘확실한 미래’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3-23 (월) 11:54 조회 : 20

두려움이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두려움은 우리의 일상을 모조리 바꾸어 놓았습니다.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더니 이제는 모임에 나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줄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예 사람 모이는 곳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멀리 오가는 여행길을 막더니 이제는 집에 꼼짝 말고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윽박지릅니다.

 

'설마 나에게까지 무슨 영향을 주겠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사람들도 어느새 생필품을 사려는 긴 줄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마스크는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예방 차원에서는 소용없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마스크 하나씩 쓰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이 만든 세상은 불편한 세상입니다. 식당과 극장, 학교와 교회, 쇼핑센터와 각종 사업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한산해진 고속도로는 사람들의 느끼는 두려움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에 불편을 양보하고 조금 더 안전하게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무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확진자, 감염 사망자의 숫자는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을 만합니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통사고 사망자의 숫자를, 자살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총기 사고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를,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그렇게 낱낱이 까발린다면 이보다 더한 공포가 찾아올 것입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두려움은 불편한 세상을 만들었고, 이제는 불확실한 세상으로 몰아갑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누가 걸렸을지 모르기에 의심부터 합니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라는 고상한 말을 쓰지만, 하고 싶은 말은 '나에게서 떨어져'라는 무정한 말입니다. '집에서 안전하게(Safer at Home)'라는 우아한 말을 쓰지만, 사실은 '잔말 말고 들어가 있어'라는 무례한 말입니다. 


아이들은 언제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해합니다.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며 평생 신앙 생활하던 기독교인들은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가 영 못마땅합니다. 이것저것 음식을 시켜 나누어 먹던 사람들에게 배달된 음식은 성에 차지 않습니다. 삶의 터전인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사람들은 렌트비 걱정에 속이 타들어 갈 지경입니다. 


오늘이 아무리 확실해도 그 확실한 오늘이 만드는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불확실한 오늘이 만들 불확실한 미래는 생각만 해도 두렵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저에게 오늘은 불확실할지 모르지만, 그 '불확실한 오늘'이 만들 미래는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투성이입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변화무쌍한 기후, 예기치 못하는 사건과 사고는 그 누구도 오늘을 장담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질수록 더욱 불확실한 오늘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확실한 미래를 만들 것입니다. 불확실한 오늘은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고, 사람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채 혼자만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함께 확실한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결기도 갖게 될 것입니다. 


저도 '불확실한 오늘'이 두렵습니다. 

당장 이번 주일 영상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두렵습니다. 

우리가 지켜왔던 주일 성수의 개념 자체가 무너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금까지 교회 중심으로, 예배 중심으로 신앙의 전통 아래에서 키워온 믿음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음식이 배달되는 세상에서 예배도 신앙생활도 편리성만 추구하는 소비문화처럼 될까 봐 두렵습니다. 


그런데 두렵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오늘'의 어수선함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예배의 부흥을 허락하실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살아있는 '확실한 미래'가 온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오늘'이 '확실한 미래'를 만든다면 그 오늘은 더 이상 불확실한 오늘이 아닙니다. '확실한 미래'를 만드는 오늘은 아무리 불확실해 보일지라도 '확실한 오늘'입니다. 그 '확실한 오늘'을 기쁨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