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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된 목사 은혜를 편집하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4-04 (토) 12:19 조회 : 190

"자 들어갑니다. 레디-셋-큐" "컷! 수고하셨습니다." 방송국이나 영화 세트장에서 나올법한 소리가 교회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교회의 모든 공적인 모임이 금지되는 바람에 주일 예배를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할 때 나는 소리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문제로 여기며 남의 집 불구경하듯 안일하게 있더니, 이제는 미국도 국가적 재난이라고 하면서 집에만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합니다.

시 정부에서는 각종 사업체에 영업 제한 조처를 내렸습니다. 식당에서는 배달이나 주문해서 가져가는 것만 허용될 뿐,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꼭 필요한 사업체로 인정받지 않으면 사업체 문을 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각종 모임과 행사가 취소된 것은 물론, 바닷가나 등산로도 폐쇄되면서 오가는 발걸음도 막혔습니다.

 

교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예배와 기도회를 포함한 모든 공적인 모임이 중지되었습니다. 모일 수 없는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면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준비 없이 맞은 변화이기에 좇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도 영상으로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데 부족한 게 많았습니다. 방송 장비가 갖춰지지 않았고, 예배당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실시간 중계는 애초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주일 영상 예배를 준비해야 했기에 부랴부랴 녹화에 필요한 장비부터 샀습니다. 카메라는 핸드폰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했기에 핸드폰에 연결해 쓰는 마이크와 삼각대에 고정할 수 있는 거치대 정도만 사면 됐습니다. 영상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쓴 비용은 총 50불 정도입니다.

이제 막강한? 장비가 마련되었으니 예배 영상을 녹화할 차례입니다. 예배 녹화를 위해 순서 맡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조명 감독도, 음향 감독도, 무대 감독도 없습니다. 평소에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아주 아담한 예배당인데 그날따라 휑해 보이는 예배당에 작은 핸드폰 카메라만 홀로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조명도 마땅치 않고, 소리도 거칩니다. 카메라도 성에 차지 않습니다. 관중도 청중도 회중도 없는 썰렁한 예배당이지만 그래도 예배이기에 정성을 다해 순서를 진행합니다. 최소한의 인원만이 참가해야 했기에 순서 대부분을 목회자들이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회중 없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모두에게 낯설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아무런 불평 없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예배 부름, 찬송, 기도, 성경 봉독 등의 순서를 녹화하고 나니 설교자만 홀로 남았습니다. 집중해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모두가 떠난 예배당에 카메라와 독대하고 섰습니다.

눈을 어디 둬야 할지도 모르겠고, 메아리 없는 외침에 목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방송에 나오는 설교자들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말씀을 전해야 할 텐데 온몸은 점점 굳어져만 갔습니다.

 

녹화를 마치니 영상을 편집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오지 못하는 성도님들에게 교회 앞마당이라도 보여 드리기 위해 사진도 찍고, 음악을 준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10년이 다 된 낡은 컴퓨터는 마음 같지 않게 더디게 움직입니다. 몇 번을 껐다 켜면서 겨우 첫 주 영상을 편집했습니다. 그다음 주부터는 큰아이 컴퓨터를 빌려서 작업을 하는데, 그마저도 디스크가 꽉 찼다고 경고를 보냅니다.

모든 게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조금 더 예쁘게 만들고 싶은데 장비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습니다. 한 번 만들어지면 오래 남을 것이기에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몇 주간 카메라로 영상을 찍고, 편집하다 보니 마치 제가 방송국 PD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방송을 만드는 피디나 목사나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종합해서 편집하는 일을 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방송국의 피디는 재미나 감동을 주기 위해 편집하지만, 목사는 은혜를 편집하는 일을 한다는 것뿐입니다.

 

물론, 은혜를 편집한다는 말이 불편하게 들릴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총감독 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삶의 현장에서 은혜를 발견하고 증거하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은혜를 편집하는 목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핸드폰 카메라지만 "큐" 사인을 주고, "컷"을 외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편집하는 저는 행복한 PD 목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