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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된 이별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1-01-16 (토) 20:10 조회 : 89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가장 많이 바뀐 것이 있다면 장례식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인생이 이 땅에서의 수고를 마치고 하나님의 품으로 가는 엄숙한 순간을 쓸쓸히 맞아야 합니다. 교우들과 지인들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별도 생략한 채 말입니다. 

고인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도 허락되지 않고, 임종의 순간을 지키지도 못했는데, 장례 예배마저 야외에서, 그것도 정해진 인원만 참석해서, 제한된 시간에 끝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장례 예배 날짜를 제때 잡을 수 있는 것만으로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팬더믹 기간에 치른 몇 번의 장례예배는 비록 많은 사람이 참석해서 성대한 배웅은 할 수 없었지만, 가족들만 모인 가운데 정갈하게 고인의 삶을 돌아보며 차분하게 작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많은 조문객이 참석해서 위로하지는 못 했지만, 가족들끼리 고인이 남긴 소중한 흔적들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빼꼭히 채운 순서와 꽃들에 둘러싸인 배웅은 할 수 없었지만, 마음을 다해 뜻깊은 이별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김정연 권사님 댁을 찾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으로 집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집 앞에 서서 성탄절을 맞아 교회에서 준비한 선물과 새해 달력을 전달해 드릴 때였습니다. “성탄절에만 가시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김정연 권사님께서 남편 되시는 김기수 권사님의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김기수 권사님은 6년 이상을 양로 병원에 계셨지만, 찾아뵐 때마다 선한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찬양을 부를 때면 그렁그렁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해서 기도할 때면 빗줄기 같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곤 하셨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거의 일 년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조차 현관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얼굴을 뵙다가 지난 몇 달 동안에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몸이 안 좋아지셨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성탄절이 지나서 가게 해 달라는 기도가 이제는 새해 첫날은 피해서 가게 해 달라는 기도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해를 넘기실 줄 알았는데, 가족의 기도대로 새해 첫날을 피해 2020년의 마지막 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지난 1월 9일에는 이석홍 집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집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나오신 지는 한 4년 정도 되셨습니다. 이 집사님은 오래전에 교회에 다니다가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수십 년간 멈췄던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속회 식구들의 환대 속에서 잊었던 믿음을 되찾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가는 동반자가 되셨습니다.

이 집사님이 교회에 처음 나오셨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시게 되셨어요?” 이 집사님은 어느 날 우체통을 여는데 교회에서 보내온 편지가 눈에 띄었다고 하셨습니다. 평소 같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편지인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버릴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열어 볼 마음도 들지 않아 뜯지도 않은 채 책상 위에 한동안 두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를 열어 보니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는 전단이 들어 있었습니다. 

2016년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서 교회 인근에 사시는 한인 가정에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오셔서 인도하는 부흥회였기에 관심이 있어 나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편지를 받고 이 집사님께서 교회에 출석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부흥회 전단과 교회 주보가 들어있었는데, 네 귀퉁이가 딱 들어맞게 너무도 정성스럽게 접혀 있는 것에 은혜를 받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세월 엔지니어로 또 가게를 운영하면서 철저하게 또 성실하게 살아오신 이 집사님은 지난 2년 사이에 혼자서는 생활하기 어려우실 정도로 몸이 안 좋아지신 상태에서 양로 병원에 계시다가 사랑하는 자녀들과 교우들과의 마지막 인사도 생략한 채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작별의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김기수 권사님과 이석홍 집사님을 아쉽게 보내드립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성대한 환영식이 열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족들과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기를 기원하며 가족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