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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넘어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7-04-11 (화) 09:08 조회 : 123

   “차별”의 사전적 뜻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 세상은 눈에 뻔히 보이는 차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큰 차별을 느끼는 곳이 아마 비행기 안일 것입니다. 비싼 값에 일등석 표를 산 사람들은 일찍 들어가서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신문을 보거나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싼값에 표를 산 사람들은 큰 짐을 낑낑거리고 들어가서 좁은 자리에 끼여 앉아야 합니다. 항공사에서는 두 가지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값싼 표를 산 사람들에게는 “당신들도 비싼 값을 내고 표를 사면 저렇게 편안한 자리에 앉아 여유를 누릴 것입니다.”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받는 쪽은 일등석에 앉은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이 만약 비싼 값을 내고 일등석 표를 사지 않으면 저 사람들처럼 고생하면서 좁은 자리로 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별을 일삼아오던 한 항공사에서 오버부킹이 된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양보를 기다리다가 나오는 사람이 없자 추첨을 통해 4명의 승객을 내리는 과정에서 내리기를 거부하는 한 동양인 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그 승객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의사였다고 합니다. 더구나 다음날 환자를 보아야 하기에 내릴 수 없다고 주장했음에도 강제로 비행기에서 끌려나가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퍼져나가면서 다른 아시안들뿐만 아니라 그 영상을 본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그 장면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다.’ 등의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도 한인 2세 여성이 친구들과 함께 스키장 인근의 숙소를 예약한 후에 도착해 보니 아시안이기에 집을 빌려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받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습니다. 집주인인 백인 여성은 “당신이 지구 상에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라도 집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신이 아시안이기 때문이다. I wouldnt rent to u if u were the last person on earth. One word says it all. Asian” 결국 눈발을 헤치며 스키장 인근의 숙소를 찾은 이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이어 일어나는 차별 당하는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이 사건을 통해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이 두 사건을 나눠서 생각해야 합니다. 비행기에서 끌려 내려가 중국계 미국인이나, 숙박업소의 일방적인 취소 통보를 받은 한국계 미국인 모두 동양사람이기에 당하는 인종적 차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숙박업소 주인의 경우 취소의 이유를 분명히 “아시안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기에 인종적 차별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끌려나간 중국계 미국인의 경우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아시안이기 때문에 내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정원을 초과해서 예약을 받은 사람 때문에 4명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고, 물론 보상이 주어지지만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등의 불편함 때문에 자원해서 내리는 사람이 없어서 컴퓨터를 이용한 추첨으로 4명의 승객을 무작위로 선정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승객들의 인종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 모두가 유색인종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이 부분은 근본적으로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차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어떤 항공사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좌석 요금이 싼 곳부터 차례로 손님의 여행을 취소할 수 있도록 적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구나 비행기 표를 구입할 때 동의하는 약관에 그런 내용이 조그만 글씨로 명시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둘째, 인종적 차별의 경우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 노력에는 차별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도 포함되고 또 우리도 다른 인종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LA 한인 사회에는25년 전 겪었던 산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4.29 폭동”입니다. 로드니 킹(Rodney King)이라는 흑인 운전자가 과속으로 차를 몰고 질주하다 몇 명의 백인 경관에게 잡혀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TV고 공개되면서 촉발된 인종 갈등은 1992 4 29일 흑인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사우스 LA에서 시작되어 이곳에서 장사하던 많은 한인 이민자들의 사업장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본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 경관들과 이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었지만, 다른 인종을 무시하는듯한 태도를 보이며 사업체를 경영하던 한인 사업장으로 그 화살이 날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도 다른 인종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이런 일이 있을 때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정확한 원인을 분석해서 대응해야 합니다. 10년 전인 2007 4 16일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 사는 한국계 이민자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살인 사건으로 기록된 이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 이민자였기 때문입니다. 괜히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괜한 피해를 볼까 두려워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이런 큰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한국계라고 해서 한국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계 미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의 문제이고, 그것도 정신인 문제가 있었던 한 사람의 문제로 철저하게 국한 시켰습니다. 이번에도 비행기에서 끌려나간 사람이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흥분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경제적 차별 때문에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그런 경우일지라도 항공사에서 규칙을 지키려다 발생한 과잉 대응 정도로 제한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화평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14) , 우리는 꿈을 꿔야 합니다. 50여 년 전, 지금보다 더 큰 차별 속에서도 꿈을 잊지 않았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들의 후손들과 노예 소유주들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서 함께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성품으로 판단되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마틴 루터 킹 목사만이 꾸었던 꿈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꾸셨던 꿈이었습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누가복음 3:5) 예수님은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 꿈을 이루어 달라는 부탁을 남기시고 가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꿈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세대에서 안 되면 다음 세대에서라도, 아니 그다음 세대에서라도 분명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런 세상을 이루실 것입니다.

   세상이 차별과 분리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화합과 일치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