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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십자가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05-18 (금) 07:31 조회 : 105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3 22일 저녁이었습니다. 이날은 "샬롬 장애인선교회" 목요 예배가 있는 날입니다. "샬롬 장애인 선교회" 목요 예배는 은혜로운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장애인들이 악기 연주도 하고 찬양도 하는 이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은혜롭습니다. 저도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찬양을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장애인 형제가 저에게 자꾸 말을 걸어옵니다. 가만히 보니 성경 봉독을 맡은 형제였습니다. 저에게 성경 본문이 맞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묻길래 걱정하지 말고 준비한 대로 읽으면 된다고 했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 같습니다. 잠시 후 그 형제는 차례가 되자 멋지게 성경을 읽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의 특송에 이어 설교를 마치고, 성경퀴즈대회가 열렸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미리 본문을 정하고 그 안에서 퀴즈를 내고 선물도 주면서 성경을 읽게 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준비해간 저녁 식사를 나눌 때였습니다.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미리 준비한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데 샬롬 장애인선교회를 맡고 계시는 박모세 목사님께서 식사를 미루고 계셨습니다. 누가 오기로 했다고 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박 목사님께서 그분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선교회에 오시더니 선교회 건물 꼭대기에 서 있는 십자가가 낡았다며 자신이 비용을 댈 테니 견적서를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박 목사님께서 수리업체를 통해 견적서를 보냈고, 그날 그분이 와서 수표를 전달하기로 했기에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샬롬장애인 선교회가 위치한 곳은 한인타운 남쪽 피코(Pico) 길입니다. 이 길만해도 상가 건물이 즐비하고, 차량 통행량이 많은 곳이기에 운전하면서 다른 곳을 쳐다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저도 몇 번 샬롬 장애인 선교회를 찾아 함께 예배드렸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입구를 놓칠 정도로 복잡한 곳입니다. 다행히 갈 때마다 안내하시는 분들이 간판을 내걸고 방문객을 맞아주어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물 위에 십자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그 길을 지나가면서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그것도 초라한 십자가가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어떤 여자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이 내미는 봉투에는 견적서와 그 견적서에 맞춘 수표가 들어있었습니다. 자신을 밸리 지역 어느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이라고 소개한 이 분은, 그렇게 비가 내리는 날 저녁을 먹고 가라는 여러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일 있을 재판을 위해 일하러 가야 한다면 그렇게 수표만 전달하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저도 손님으로 그 자리에 있었기에 그분과 따로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옆에서 일어나는 일만 보는데도 마음이 좋았습니다. 낡은 십자가를 보며 마음의 아픔을 느꼈고, 그 아픔을 수리 비용으로 갚으며 사랑을 나누려는 그분의 마음이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분의 뒷모습이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다음번에 샬롬 장애인 선교회에 가면 새로 단장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때에는 십자가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어떤 이의 고귀한 사랑도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한마음 한사랑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