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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녘에서 소중한 소망을 만나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7-31 (금) 10:09 조회 : 25

- <소망 소사이어티> 소식지 30호 머리글

바윗돌을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기 위해 땀을 흘리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무거운 바윗돌을 겨우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그 바윗돌은 다시 굴러떨어집니다. 사내는 바윗돌을 찾으러 묵묵히 내려가서 다시 밀어 올린다는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Sisyphos)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살기 위해 노동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인생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철학자 카뮈는 '시시포스'가 감당해야 했던 끝없이 반복되는 형벌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반항하는 인생을 그렸습니다.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인생도 '시시포스'가 감당해야 했던 무의미한 노동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시시포스'가 돌을 굴리며 오르려 했던 산꼭대기를 우리는 '정상'이라고 부릅니다. 그곳에 서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부지런히 달려왔습니다.

그 산꼭대기를 향하는 길에는 '중심'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 중심을 차지하기만 하면 세상은 나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쑤석댑니다. 그 좁은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달려야 하고, 비집고 올라서면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세상이라고,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선심 쓰듯 들려줍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조금만 고생하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거렸습니다. 사업에 성공하면,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산꼭대기에 올라섰는데도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더 높은 산의 정상이 보여 거기에 올라섰는데도 기쁨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시시포스'가 되어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산꼭대기의 삶은 외로웠습니다. 그곳에도 가장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더 무서웠습니다.

거기서 밀리면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으려다 보니 언제나 긴장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젊을 때는 그나마 어느 정도 버텼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버틸 힘도, 의지도 사라졌습니다.

물러서야 할 때가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나아가야 할 때였습니다. 두려웠지만 한 발을 바깥으로 내디뎠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또 한 발자국을 더 내디뎌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한 발자국만 옮기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붙어 있습니다. 조금 더 내려왔지만, 그곳도 역시 살만한 세상이었습니다. 조금씩 내려서면서,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연습을 해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얕은 풀이 있고, 이름 모를 들꽃도 피어 있었습니다. 잔잔한 물도 있었습니다. 높은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좁은 산꼭대기에서 아등바등 버티고 있을 때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땅이 우리에게 열렸습니다. 바로 그곳이 우리가 설 땅이었습니다.

노자는 행복을 얻기 위해 무거운 돌을 굴리며 산꼭대기에 오르는 현대인들을 향해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했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노자는 물에서 선을 배워야 하는 이유로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한다고 했습니다.

'소망 소사이어티(Somang Society)'가 귀한 이유는 산꼭대기만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내려와야 할 곳이 있음을 알리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실망하고 내려온 이들이 행복하게 설 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망 소사이어티' '인생의 가녘에서 만나는 소중한 소망'입니다. '가녘'은 둘레나 끝에 해당하는 부분, 즉 가장자리를 뜻합니다. '가장자리'라는 쉬운 말을 두고 굳이'가녘'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저녁'이 해가 저무는 때를 가리키는 것처럼 '가녘'은 저물어 가는 인생이 설 수밖에 없는 끝부분이라는 느낌이 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가녘'은 산꼭대기에 오르겠다는 무모한 욕심도 더는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높은 곳에서 출발한 물줄기가 세상을 굽이굽이 돌아 낮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겸손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서야 함을 일깨우는 곳입니다.

연못 한가운데 돌이 떨어지면 물결이 원을 그리며 퍼져갑니다. 크기도 점점 커지고, 간격도 넓어지면서 나아가다가 연못가에 이를 때쯤이면 돌에 맞아 꿈틀대던 아픔의 물결도 사그라들고 잔잔해지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가녘도 마찬가지입니다. 산꼭대기에서 당한 상처도, 유색인종으로 살면서 겪었던 차별도, 눈치와 배짱으로 버텨온 이민 생활의 긴장감도 다 잔잔해지는 곳입니다.

인생의 가녘은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머무는 가장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천국을 소망하는 창조적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가 자란 흔적을 보여줍니다. 나무는 철저히 중심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자리에서 자랐음을 말해주는 것이 나이테입니다.

인생의 가녘은 성숙과 은혜로 어수선한 세상을 헤치고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인생의 나이테입니다. 인생의 가녘에서 서로를 북돋우며 창조적 중심에서 성장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소망 소사이어티'가 우리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