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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배달되는 연하장(年賀狀)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01-10 (수) 11:57 조회 : 14

     "계셔요연말을 맞아 우리 집을 찾는 분주한 발걸음들 속에 들린 반가운 목소리에 현관문으로 달려갔다물건 배달 온 사람들은 벨 한 번 울리고는 사라지는데 익숙한 한국말이 들리니 얼마나 반가운가목소리의 주인공은 앞집에 사는 C 집사였다이민자로 살면서 다른 인종에 둘러싸여 지내는 일이 많은데마주 보이는 곳에 정이 통하는 한인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일 때가 많다잦은 왕래는 없지만 그래도 명절이면 과일 한 상자씩 주고받으며 의지하며 지낸다.
     C 집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더니 다짜고짜"새해에는 신문 넣어 드릴 테니 보세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신문 안 봐도 되는데요요즘은 인터넷으로 신문 다 볼 수 있어요괜히 구독료에 종이 낭비할 필요가 뭐 있어요.' 사양할 이유는 많지만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입으로는 "저희 (신문 안 봐도괜찮은데......"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C 집사의 결심이 너무도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중앙일보 2년 치 신청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보세요." 그는 그렇게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길 건너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새해가 밝았다. '신문이 온다고 했는데 언제부터 오려나?' 아침마다 작은 설렘으로 기다리기를 며칠째아직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이른 새벽낯선 물체가 집 앞에 덩그러니 나를 기다리고 있다나만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이놈도 새 주인을 만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게다.
그렇게 새해 첫 선물을 받았다선물마다 그 안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C 집사는 가끔 중앙일보에 실리는 내 글을 잘 읽고 있다며 신문을 넣어주겠다고 했다앞집 목사의 글을 신문에서 만나는 반가운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신문을 보면서 이 신문이야말로 나를 만나기 위해 참 먼 길을 달려왔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신문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렸을까기사를 쓰고불경기에 광고 내고편집하고조판하고인쇄하고 배달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낮이 밤으로 바뀌었을 것이다누군가는 단잠에 빠져 있을 때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 살다가 사라질 운명인 이 신문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밤을 꼬박 지새웠을 것이다.
     신문을 넣어 주겠다고 한 C 집사는 전형적인 이민1세대다맨몸으로 미국에 와 사업을 키웠다꼼꼼함과 성실함으로 그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자리에 올랐다자녀들도 잘 자랐고 손주도 여러 명 두었다남부럽지 않게 살면서도 같은 교회 목사도 아닌 이웃집 목사에게 신문을 넣어줄 만큼 배려하는 마음도 갖고 산다.
     신문을 펼치면서 C 집사의 마음을 읽는다. '목사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지요복음도 좋고 설교도 좋지만이민자들이 치열하게 사는 삶의 현장을 이해하고 설교하세요.' 앞으로2년 동안 꼼짝없이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만나야 한다신문에는 기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민자들이 피땀으로 일구어놓은 사업체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숙제가 생겼다어떻게 거저 받고만 말 것인가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보며 이 신문을 보낸 C 집사를 생각하며 기도해야 하는 일은 나에게 주어진 숙제다.
     "중앙일보 2년 구독"이라는 새해 첫 선물은 그냥 한 번만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다매일 배달되는 연하장이었다이 글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