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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虎叱)'과 미투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03-26 (월) 09:22 조회 : 157

'북곽 선생'은 존경받는 선비였다. 그가 낸 책이 만 권이고, 유교 경전을 풀이해 책으로 엮은 것이 만 오천 권이나 되었다. 그는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어진 성품과 높은 도덕성으로 세상의 존경을 받았다. '북곽 선생'이 옆 마을에 사는 '동리자'라는 과부를 찾았다. '동리자'는 얼마나 정절이 곧던지 그녀가 사는 동네가 '동리 과부 마을'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고매한 '북곽 선생'이 정절 곧은 '동리자'의 처소로 들어서자 '동리자' '북곽 선생'에게 오랫동안 연모해 왔노라며 낭랑한 음성으로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북곽'이 막 책을 읽으려고 할 때, '동리자'의 다섯 아들이 나타나서 소리쳤다. "'북곽 선생'은 과부의 집에 들락거릴 분이 아니야, 저놈은 분명 '북곽 선생'으로 변장한 여우일 테니 저놈을 잡아라."

여우로 몰려 죽을 지경이 되자 '북곽 선생'은 달아나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미친 사람 흉내를 내며 뒤뚱거리다 거름통에 빠졌다. 거름을 뒤집어쓴 채 겨우 빠져나와 얼굴을 드니 호랑이 한 마리가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북곽 선생'은 체면이고 뭐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며 호랑이 앞에 갖은 아첨을 늘어놓았다.

" 일찍이 들으매 '선비 ()' 자는 '아첨 ()' 자로 통한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제 것이 아닌 물건에 손을 대는 놈을 일러 도적놈이라 하고, 살아있는 것을 잔인하게 대하고 사물에 해를 끼치는 놈을 화적 놈이라고 하는데, 네놈들이야말로 밤낮을 쏘다니며 분주하게 팔뚝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남의 것을 낚아채려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심한 놈은 돈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장수가 되겠다고 아내조차 죽이는 판인데 삼강오륜은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떠오르는 햇살을 맞으며 한마디 대꾸도 못 한 채 호랑이의 꾸짖음을 들으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데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뉘신가? '북곽 선생' 아니신가? 이른 아침에 들에 엎드려 뭘 하시는가?" '북곽 선생'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높기에 감히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두껍기에 감히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네, 땅에 무릎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것 아닌가?"

이 이야기는 연암 박지원이 쓴 '호질(虎叱)'이라는 소설의 내용이다. 연암은 지식과 도덕을 내세우던 양반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호랑이의 입을 빌려 꾸짖고 있다.

미 영화계에서 시작된 '미투(#Me too)'라고 불리는 가슴 아픈 고발 운동이 한국에서는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를 돌아 사회 각 곳으로 퍼지며 힘과 지위로 성을 짓밟았던 권력자들의 민낯을 비춘다.

'미투(#Me too)'의 가해자로 지목된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별칭이 '우보()'였다고 한다. '소처럼 우직하게 걸으며 호랑이의 눈으로 보라'는 뜻의 '우보호시(牛步虎視)'라는 말에서 따온 말이다. 호랑이의 눈으로 보라는 말을 하기 전에 호랑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호랑이의 꾸짖음을 듣는 망신만큼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란 의심스러울 '()', '()'속일 '()', '()'란 아첨할 '()'라고 조롱받던 당시의 의사나 무당(종교인), 선비들처럼 어쭙잖은 지식을 힘이라고 뻗대기는 사이 윤리를 잃은 이들로 채워진 세상이기에 연암의 꾸짖음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리는 것은 아닐까?

 

<이 아침에> LA중앙일보 칼럼 2018.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