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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이 사라지는 세상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04-24 (화) 09:41 조회 : 65


널따란 주차장 한쪽에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급하게 내린 젊은 여성이 가방을 들쳐 메고 달리기 시작한다. 중요한 약속에 늦었는지 아니면 가게 문 여는 시간을 놓쳤는지 부리나케 달린다. 새벽기도 마치고 교회 근처 식당에서 커피와 함께 베이글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있던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다. 불과 몇 초밖에 안 되었을 이 시간이 영화의 끝 장면처럼 남은 까닭은 달려가던 이의 모습에서 묻어난 간절함 때문이었다. 비록 그녀의 가뿐 숨소리는 두꺼운 유리창에 가로막혀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간절함만큼은 오랜 여운으로 남아 있다.

이름 모를 여성의 간절한 달음박질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 저렇게 간절히 뛰어 보았지?' 학창 시절에는 참 많이도 뛰어다녔다. 고단한 몸을 이부자리에서 끌어내는 것이 힘들어 '5분만 더, 10분만 더.' 하며 늦잠을 자다가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언덕바지에 있는 학교를 향해 달릴 때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몽둥이를 두드리며 교문을 지키고 있을 황금박쥐(학교마다 이런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꼭 한 명씩 있었다.) 선생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서는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힘든지 모르고 달렸다.

미국에 와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참 열심히 달렸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청소하면서 부지런히 달렸다. 개척교회 목사로 살면서도 열심히 달렸다. 갓 태어난 첫째 아이를 바구니에 담고 새벽에 나갔다가 한밤중에 들어오는 우리 내외를 보고 신혼집 아파트 위층에 살던 사람이 우리 가족의 정체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때는 간절함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간절했다.

하나둘씩 삶의 자리가 잡히면서 간절함도 사그라들었다. 그것이 자리 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준비한 대로 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그날 아침 주차장에서 뛰어가던 이의 뒷모습에 무너져 내렸다. 아니었다. 간절함이 사라지는 것이 꼭 자리 잡은 모습은 아니었다. 간절함이 사라진 만큼 꿈도 사라졌다. 간절함이 사라지면서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도 함께 사라졌다.

프리웨이 입구에서 도움을 청하는 노숙인이 든 피켓에서 간절함을 느끼지 않았는가? 내 삶의 자리에 들어와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아픔에서 느껴지던 간절함은 어디로 간 것인가? 이들을 향한 간절함은 커녕 내 삶의 자리를 침범하는 이들이 이제는 불편하게 여겨진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쟁과 테러의 소식, 난민들의 이야기, 환경 파괴로 인한 영향, 지도계층의 부도덕한 모습, 이민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위협을 대할 때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대로 두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마음졸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아니다. 간절함이 사라졌다. 내 주위의 일을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인 양 모른 체한다. '내가 직접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세상을 향한 간절함을 사라지게 했다. 간절함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책임도 잊고 산다. 다음 세대가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그래도 누군가의 간절함이 있기에 이나마 살만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직도 내 간절함이 필요한 곳이 있지 않은가? '간절함이 사라지는 세상'을 간절히 아파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