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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웃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05-18 (금) 07:35 조회 : 104

어느 날 오후였다. 약속 시각에 맞춰 차를 몰고 가는데, 앞에 스쿨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노란 불을 깜빡이며 서 있는 스쿨버스 뒤로 차들이 꼼짝달싹 못 하고 기다린다. 내 차도 그 뒤에 서서 우두커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이들이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내린 아이들 몇이 조잘거리면서 버스에 도로 오를 기세를 하고 있었다.

누구를 부르는지 큰소리로 부르다가 하나씩 버스에 올라탔다. '아니 이 시간이 버스를 탈 시간인가?' 의아해하는데, 버스에 올라탄 아이들이 하나씩 도로 내리기 시작했다. 나른한 오후가 짜증 나는 오후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스쿨버스는 출발했고, 뒤를 이어 다른 차들도 느릿느릿 제 길로 흩어졌다.

'한국 같았으면 경적을 울리고, 소리치고 했을 텐데, 그래도 미국은 참 기다리는 것 하나는 잘하네.'라고 생각하며 아까의 짜증을 애써 지우는데 지나가던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He never smiles 어쩌고저쩌고" 그런 말이었다. 분명히 자기들끼리 하는 말인데 나에게 하는 말인 듯 또렷하게 들렸다.

He never smiles. 그 사람 웃는 걸 한 번도 못 봤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내 얼굴을 거울에 비쳐 보았다. 굳어 있었다. 아까의 짜증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혼자 차에서 웃을 일도 없기에 가만있었는데 역시나 굳은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얼굴만 굳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무엇인가에 쫓기듯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각박한 이민 생활을 하는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웃을 여유를 잃어버렸다는 듯 지친 표정을 하고 있다. 문제는 웃음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웃음과 더불어 삶의 여유, 삶의 에너지마저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웃을 일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도 이유이지만, 내 마음이 각박해지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 것을 다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에게서 웃음을 빼앗는다.

남들은 자꾸 올라가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좌절감이 우리에게서 웃을 여유를 빼앗는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다. 그런 소식에 마음을 단련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강퍅한 마음 판이 돼버렸다. 속절없이 가는 시간 앞에 마음도 표정도 점점 굳어질 때쯤 계절은 5월로 접어들었다.

5월은 생명의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듯 푸르름으로 차오르는 계절이다. 새록새록 피어나는 생명의 자취가 온 세상을 뒤덮는 계절이다. 생명은 신비롭다. 메마른 땅을 이름 없는 들꽃이 뒤덮고, 딱딱한 나뭇가지를 뚫고 새순이 돋는다. 생명은 부드럽다. 세상을 향한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뱃속에서 난 아기의 볼살은 연하디연하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몸도 마음도 딱딱해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생명은 너그럽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도 세상은 너그럽게 기다릴 줄 안다.

생명 있는 것치고 어느 것 하나 너그러움의 덕을 안 본 것이 없다. 시간이 너그럽게 기다려줬고, 비가 너그럽게 대지를 적셨고, 태양이 너그럽게 비춰줬고, 어머니가 너그럽게 품어 주었다. 너그러움의 계절 5월이 찾아왔다. 대지의 너그러움이 세상을 짙은 녹색으로 물들이듯, 마음의 너그러움으로 세상을 부드러운 생명의 신비로 채우는 너그러움의 계절을 맞이하자!  


<LA 중앙일보 칼럼 2018년 5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