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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프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09-03 (월) 19:45 조회 : 50

여름 한낮의 열기를 머금은 교회 주차장으로 차 한 대가 거칠게 들어섰다. 옷가지가 널브러진 뒷자리가 범상치 않게 보인다. '분명 경제적 도움을 청하겠구나'. 오랫동안 감지 않은 듯 헝클어진 머리의 백인 여성 운전자가 굳은 표정으로 창문을 내리면 말을 건넸다. '설교자'를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미국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교회에서 쓰는 '목사(Pastor)' 혹은 '성직자(Clergy)'라는 말을 알 텐데, '설교자(Preacher)'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니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이 분명했다.

목사를 만나면 도움을 청할 것이 뻔했다. 이런 상황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설교자가 없으니 다음에 오라는 말과 함께 돌려보내는 것이다. 괜히 내가 목사라고 했다가 도움을 청할 때 들어줄 수 없으면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머리로는 지금 설교자 없다고 해야 하는데, 입으로는 '내가 목사'라는 말이 나와 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란다. 기도해 달라는데 못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무 사정도 모르는 채 낯선 백인 여성에게 영어로 기도해야 하는 부담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시간이라도 벌어볼 꿍꿍이셈으로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데 신세타령이 끝없이 이어졌다. 날은 더워지고 주차장에 서 있는 나의 집중력은 흐트러지는데 그녀의 넋두리는 그치질 않았다.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남편도 자신을 떠났다고 했다. 아이들도 자신을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도 없이 자동차에서 기거하는 신세라며 세상이 모두 자신을 피한다고 했다. 

한참 하소연을 하던 그녀가 드디어 기도 제목을 말했다.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정신적인 문제라며 '분노 조절 장애와 불안장애' 때문이니 그 마음의 병이 치유되기를 기도해 달라고 했다. 기도하기에 앞서 뭐라도 위로의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백인 여성이 무턱대고 한국 교회를 찾아 주차장에서 만난 목사에게 '나 아프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을 보며 '얼마나 아팠으면 그렇게 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프다(me too)!" 그녀의 말을 듣고 난 후,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구겨진 마음이 펴지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래도 교회 목사는 다른 줄 알았는데, 목사도 자신과 똑같은 마음의 병이 있다는 말이 무척 큰 위로가 되었나 보다. 

목사라고 부당함, 모멸감, 좌절감, 무력감에 화나고, 떨리고, 숨이 가빠지고, 답답하고, 잠을 뒤척이고, 땅이 꺼질 듯 불안감이 몰려올 때가 왜 없겠는가? 체면 차리느라 괜찮은 척하고 사는 것뿐이지 그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의 병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내가 기도할 차례다. 같이 기도하자는데 필요 없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환한 미소와 함께 차를 몰고 나간다. 나는 "나도 아프다"고 한마디 밖에 안 했는데, 그게 위로가 되었나 보다. 우리는 모두 아프다.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한 것은 같이 아파해 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LA 중앙일보 칼럼, 2018년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