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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시작 '작별 상봉(作別 相逢)'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09-11 (화) 09:50 조회 : 62

만남을 뜻하는 말이 여럿 있다. 오랫동안 헤어졌다 만날 때 '해후'라는 말을 쓰고, 우연한 만남을 '조우'라고 한다. '회우, 조봉, 상면, 알현, 대면' 등이 각 상황에 맞는 만남을 뜻한다. 다양한 만남 중에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날 때 '상봉'이라고 한다.

상봉은 말 그대로 '서로 만남'을 뜻한다. 그것도 '극적 상봉'과 같이 기대하지 못했던 이들이 서로 만날 때를 관용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상봉'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만남이 있다면 '이산가족 상봉'일 것이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수십 년간 헤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일이야말로 '상봉'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만남이다.

얼마 전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상봉'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사흘간의 만남이 수십 년간 헤어진 채 살아온 세월의 벽을 뛰어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2015년 이후3년 가까운 시간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던 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만남이었음이 분명하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전하는 신문은 함께 쓸 수 없을 것 같은 두 단어를 맞붙여 제목으로 삼았다. '작별 상봉(作別 相逢)''이라는 말이다.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이라는 뜻이고, '상봉''서로 만난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작별 상봉'이라는 말에는 '헤어짐과 만남'이라는 함께 쓸 수 없는 두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 말에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 위해서 서로 만난다.'라는 뜻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짐작 정도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작별 상봉'을 해야 하는 이들의 마음까지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아쉬운 작별이기에 헤어지기 위해 만나야 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끼리 헤어지기 위해 만나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마지막 날이었던 826, 남북의 가족은 '작별 상봉'을 마지막으로 다시 긴 이별에 들어갔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은 짧은 만남, 그리고 기약 없는 이별. 어쩌면 이민자로 사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신분, 경제, 사업의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산가족으로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만남에 대한 기대마저도 접고 이민자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작별 상봉'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 달 전 미국에서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미국에 사는 서류 미비 남미계 이민자들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텍사스를 찾았다. 한 이민자 보호 단체가 주선한 '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십수 년째 못 본 가족을 만나러 수백 마일을 달려온 이도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 만났고, 형제와 자매가 부둥켜안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처음으로 손주들을 안기도 했다. 오랜 시간 헤어져 살던 부부는 뜨거운 포옹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180초였다. 만남의 기쁨보다 헤어짐의 쓰라림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만나자 이별'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작별 상봉'이었다. 180,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뿌리를 충분히 내리는 시간이었다. 180초짜리 짧은 만남을 통해 헤어졌던 이들의 얼굴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기에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이었다. 이번 '작별 상봉'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LA 중앙일보 칼럼, 2018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