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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넘어져도 안아줄 그곳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09-28 (금) 16:33 조회 : 47

고향, 넘어져도 안아줄 그곳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듯이 '추석'이라는 말이 마음을 푸짐하게 한다. 휘영청 솟아난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을 차오르게 만드는 것은, 다른 때는 몰라도 추석 때만큼은 먹을 것도 많고, 친지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추억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이나 돼야 새 옷도 입고, 햇과일도 맛보고, 친척들 얼굴도 볼 수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에야 마음만 먹으면 새 옷 한 벌 정도야 언제든 걸칠 수 있고, 햇과일뿐 아니라 철 잃은 과일도 종류별로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것뿐인가. 손안에 든 전화기는 태평양 건너 뿐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사람을 불러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이민자로 사는 우리들의 마음은 명절이면 여전히 허전하다. 미국에서 뜨는 보름달이나 한국에서 뜨는 달이 같을 텐데, 미국 달은 왜 그리 정이 안 가는지, 미국에서 먹는 과일이 한국에서 먹던 과일보다 더 크고 색도 진한데 입속에만 들어가면 왜 그리도 빡빡한지, 고향에 모인 친척들 얼굴이야 전화기로 볼 수 있지만, 살아내느라 애쓰며 흘린 땀 냄새까지는 맡을 수 없다는 것이 왜 우리 마음 한쪽을 애잔하게 하는지.

명절의 소란함을 피해 사는 이민자의 삶이 아무리 더 낫다고 애써 자신을 위로해 봐도, 여전히 눈과 마음이 고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 명절은 종일 그리워하는 시간임이 분명합니다. 회색빛으로 물든 도시에서 고향을 잃고 사는 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소재로 시를 써 '향토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시인 김준태는 "고향"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고향에선

눈감고 뛰어도

자빠지거나 넘어질 땐

흙과 풀이 안아준다.


시를 읽다가 깨달았다. 이민 생활이 외로운 것은 고향을 떠나서가 아니라 눈감고 뛸 고향이라는 배경이 없어져서다. 자빠지거나 넘어질 때 나를 안아 줄 흙과 풀이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민 생활이었기에 늘 긴장 속에 살아왔다. 넘어지면 나를 안아 주는 것은 흙과 풀이 아니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기에 기를 쓰고 몸을 세우고 살았다.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명절은 고역의 때다. 그리움으로 목을 죄고, 아쉬움으로 눈을 가리고, 서운함으로 눈물을 쏟게 하는 고문의 현장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우리들이 아니다. 그럴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향이 없으면 그까짓 고향 만들면 되지 않는가?

동포들이, 같은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한 사업체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자빠지거나 넘어질 때 안아 줄 흙과 풀이 될 수 있으면 그곳이 고향 아니겠는가?

고향의 맛을 전하는 한인 식당이, 고향의 소리를 전하는 신문과 방송이, 고향의 마음을 나누는 예배당이 자빠지거나 넘어져도 안아 줄 흙과 풀이 되어준다는 자신감으로 눈감고 뛸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우리의 고향이 아니겠는가?

우리끼리도 고향이 되어주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세상에서 지쳤을 때 돌아와 기댈 고향은 어디겠는가?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고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고향으로 만들자. 눈감고 뛰어도, 자빠지거나 넘어질 때 안아 줄 흙과 풀이 있는 그런 고향 말이다.

<LA중앙일보 칼럼, 2018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