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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8-11-13 (화) 08:52 조회 : 477

"안돼!" 

살면서 숱하게 들어온 말이다. 싸워도 안 되고, 밥을 남겨도 안 되고, 약속을 어겨도 안 되고, 세상이 만들어놓은 테두리를 벗어나도 안 된다. "안돼!"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알아서 몸을 움츠리다 보니 주인에 길든 순한 애완동물처럼 되었다. 물론, 말로는 그런 삶이 교양있는 삶이고, 시민 의식이 있는 삶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이다.  

이민자들에게는 "안돼!"라는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세상이"안돼!"라고 정해놓은 범위를 벗어나면 이민 생활의 실패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 때문이다. 영주권이 안 되면, 운전면허증이 안 나오면, 비자가 연장되지 않으면, 어렵게 시작한 사업이 안되면 그것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다못해 사소한 교통법규 하나 어겨도 벌금에, 교육에, 보험료 인상까지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다. 곳곳에 묻힌 "안돼!"라는 지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사는 이민자들의 삶은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You may do that)" 몇 달 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를 방문했을 때 만난 말이다. 그 말과 마주한 순간 "안돼!"라는 말에 워낙 익숙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말이 무척이나 낯설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몽고메리의 한 백화점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흑인 여성 로사 파크스(Rosa Parks)는 퇴근길에 버스에 올랐다. 지친 몸을 기대고 앉아있던 자리는 백인들을 위한 지정석은 아니었지만, 백인들이 서 있으면 양보해야 했다.

버스에 백인들이 하나둘 오르면서 옆에 있던 흑인들은 자리를 양보하고 알아서 뒤로 갔다. 여기 앉아 있으면 "안돼!"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순응하는 법을 체득한 흑인들은 불평등한 세상에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로사 파크스는 자신의 권리를 빼앗는 불평등한 버스 정책에 항의하고 싶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이 더 피곤하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정말로 지쳤던 건 굴복하는 거였다. '안돼!'라는 말에 굴복해야 하는 데 넌덜머리가 났던 게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운전 기사에게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You may do that)"

힘없는 한 흑인 여성이 가냘프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이 한마디가 흑인 인권 운동의 실마리가 되었고, 결국 세상을 바꿨다. 몽고메리 다운타운에 있는 덱스터 침례교회 담임이었던 26세의 젊은 목사 마틴 루서 킹은 로사 파크스의 구속으로 시작된 흑인 인권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안돼!"라는 말로 겁주는 세상을 향해 의연히 일어선 한 여인의 용기가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라는 벽을 허물었다.

몽고메리 다운타운에 있는 로사 파크스 기념관에 들어서자 버스 의자에 앉은 그녀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체구의 로사 파크스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안돼!'라고 말하는 세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 앉아 있으면 경찰을 부를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는 운전기사를 향해"그렇게 하셔도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그녀의 빈 옆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그 자리가 내 자리는 아닐까? 나야말로 불평등한 세상이 "안돼!"라고 위협하며"그 말을 듣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길 거야"라고 겁박할 때"그렇게 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LA중앙일보 칼럼, 2018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