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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봐서 미안하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9-07-13 (토) 15:13 조회 : 150

목련이 폈다. 그것도 사람 얼굴만 한 목련이다. 아니 폈다기보다 갑자기 나타났다. 늘 지나는 길인데, 늘 보던 나문데,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목련이 왜 오늘에야 눈에 들어온단 말인가?

"몰라봐서 미안하다.' 그 목련과 눈을 마주칠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렇게 큰 꽃이 활짝 웃을 때까지 나는 뭘 보고 다녔단 말인가? 목련에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가는데 옆에 선 나무도 꽃도 들풀도 서로 봐달라고 아우성친다.

그래 너도 있었구나. 너는 언제 이런 옷을 입고 있었니? 빨강 물감을 들인 듯 화려함을 뽐내는 장미꽃에도 인사했다. 길쭉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들풀에도 아는 체를 한다. '네가 잔디밭에 잘 못 날아와서 그렇지 딴 데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정원사의 눈에 띄면 언제든 뽑힐 잡초이기에 아쉬움 가득 머금고 바라본다. 얼마 전 누군가가 열심히 땅을 파고 심은 화초의 축 처진 모습이 안쓰러워 눈길 한 번 더 주며 응원했다.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지. 조금만 더 힘내.' 정원에 깃든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자리를 뜨는데 머리 위에서 새들이 노래한다. '그래 너도 있었구나. 미안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꼭 우리네 이민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얼마나 속상했던가? 기를 쓰고 그 자리까지 왔는데,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니 얼마나 허망했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은 나만 모자라서 그런 것인가?

그 속상함을 조금이나마 덜려고 나 좀 봐달라고 소리친다. 때로는 악다구니를 부리고, 어떤 때는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고, 맘에도 없는 선심도 쓰면서 살아왔지 않은가?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다고 하면서도 밤만 되면 눈물을 찔끔 짜고, 누가 볼까 봐 혼자서 외로움과 맞서며, 생계를 꾸리느라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뚱어리는 파스 한 장으로 슬쩍 덮어 두며 견뎌온 이민 생활 아니었던가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젊을 때는 그렇게라도 견디면 될 줄 알았는데 나이 들면서 그나마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다시 혼자다. '어차피 사람들 꼴 보기 싫어 미국 왔잖아.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인생이 편하고 좋다고 했잖아.' 애써 자신을 위로하지만 어디 속마음까지 속일 수야 있겠는가? 그냥 말만 그럴 뿐이다.  

이제 겨우 알아봤는데 목련의 널따란 꽃잎이 옷 벗을 준비를 한다. 이제 조금 친해지려나 했는데 벌써 이별해야 할 때가 된 모양이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나에게 목련은 웃으며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지금이라도 알아봐 줘서 고마워' 더 늦기 전에 알아봐 줘야 할 꽃, 나무, 풀 같은 사람이 떠오른다. 이 아침에 인사할 사람이 더 생겼다.

<LA중앙일보 칼럼, 2019년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