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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줄다리기, 인생의 줄다리기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9-09-25 (수) 15:39 조회 : 11

요맘때면 여름과 가을이 겨루는 줄다리기가 볼만하다. 세상을 더운 기운으로 하루라도 더 덮으려는 여름과 하루라도 빨리 서늘한 바람으로 세상을 식히려는 가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가을이 이기는가 싶어 두툼한 이부자리를 꺼내 놓으면 영락없이 여름이 마지막 용을 써 살림하는 이의 손을 어색하게 만든다.

주도권 다툼이 제아무리 치열해도 계절끼리의 줄다리기에서는 승자가 정해져 있다. 여름이 아무리 애를 써도 가을을 이길 수 없고, 가을이 높은 하늘을 아무리 자랑해도 겨울 추위를 미룰 수 없고, 겨울의 매서움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봄기운을 막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봄바람이 아무리 좋더라도 여름이 오면 더위에 길을 내줘야 한다. 계절이 겨루는 줄다리기는 공평하다. 두 번 이긴 계절이 없고, 두 번 진 계절도 없다. 승리와 패배를 한 번씩 공정하게 나누다 보면 한 해가 가기 마련이다. 승자는 정해져 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줄다리기는 어김없이 다시 시작된다.

요즘 여름과 가을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한낮에는 여름이 이기는 듯하더니 아침저녁의 서늘한 기운은 영락없이 가을의 손을 들어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갈팡질팡해도 결국에는 가을이 이길 것이다. 그게 세상 이치이기 때문이다.

인생에도 줄다리기가 있다. 삶과 죽음이 겨루는 줄다리기다. 한창 힘쓸 때야 내가 이기는 것 같았다. 당기는 것마다 줄줄 걸려 올라올 때도 있었다. 누구 못지않게 고생도 했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그리 내세울 것 없이 그저 겨우 살았다고 해도 이만큼 살아온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써 줄을 당겼는지 알만하다.

계절의 줄다리기에 승자가 정해져 있다면 인생의 줄다리기에도 승자가 정해져 있다. 엎치락뒤치락 몇 번 했다고 승자가 바뀌는 법은 없다. 인생 줄다리기에서도 죽음이 이길 것이다. 철이 바뀔 때처럼 당길 때가 있으면 놓아 줄 때가 있다는 것도 계절의 줄다리기와 같다.

늦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여름이 가을을 이길 수 없듯이 살려고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삶이 죽음을 이길 수 없다. 가을에 자리를 내주고 점잖게 물러설 줄 아는 여름처럼 삶도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줄을 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소유의 줄을 놓고, 관계의 줄도 놓고, 욕심과 명예의 줄도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온갖 것을 움켜쥐고 놓치지 않겠다고 아등바등 버텨봐야 한순간에 줄은 끊어지고 차디찬 땅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뿐이다.

눈부시게 찬란하던 여름 볕이 미지근한 온기를 담은 가을 햇살에 자리를 내주는 이 때야말로 삶과 죽음을 성찰하고, 지금까지 악다구니를 쓰며 붙잡고 있던 욕심이라는 줄을 놓을 때다. 그것도 살푼 줄을 놓아 가을을 맞고 슬그머니 물러서는 여름처럼 품위 있게 말이다.


<LA중앙일보 칼럼, 2019년 9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