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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9-12-24 (화) 21:08 조회 : 174

'2019'라는 낯선 숫자를 새해라는 이름으로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 낯섦이 익숙함으로 채 바뀌기도 전에 '2019'라는 숫자를 과거로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되었다. 열두 장짜리 두툼했던 달력도 한 장 한 장 세월의 흔적 속으로 보내고 나니 끄트머리 한 장만 덩그러니 남았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지난 온 세월을 돌아보니 후회가 앞선다. 새해를 시작할 때 가졌던 굳은 다짐은 나약한 의지 뒤로 숨은 지 오래고, 한 해를 설계하던 설렘은 아쉬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해를 맞던 황홀한 기대감은 허탈한 현실과 맞바꿨다.

후회만 남긴 채 한 해를 흘려보내고 나면 또 다른 해를 부끄럽게 맞아야 한다. 새해를 맞는 마음에 부끄러움이 앞서는 이유는 해마다 반복되는 실수로 속절없이 무너지는 자신의 나약함을 알기 때문이고,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강퍅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스라이 서 있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마음을 다진다. 가는 세월이야 막을 수 없지만, 오는 세월만큼은 온몸으로 덤벼봐야 하지 않겠는가? 끄트머리는 끝이 아니다. '' '머리'가 붙었으니 끝남과 동시에 다시 시작된다는 뜻이다. 우리말 사전에도 '끄트머리'의 뜻을 '끝이 되는 부분' '일의 실마리'로 풀어 놓았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아프리카의 최남단에는 '폭풍의 곶(Cape of Storm)'이라는 언덕이 있었다. 148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인도양 항로 개척을 위해 나섰다가 심한 폭풍으로 실패하고 붙인 이름이다. 사람들은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바다라는 의미를 담아'절망의 곶'이라고 불렀고, 그 누구도 그 바다의 끝을 넘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1497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폭풍의 곶'을 지나 인도로 가는 항로 개척에 성공했다. 그가 바다의 끄트머리를 지났을 때 '폭풍의 곶'은 더는'절망의 곶'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의 왕은'폭풍의 곶'이라는 이름 대신 '좋은 희망의 곶(Cape of Good Hop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희망봉'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희망을 품은 이들에게 바다의 끄트머리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실마리일 뿐이었다.

2019년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실패, 절망, 포기, 실연, 죽음'처럼 ''이라 이름했던 것 뒤에 '머리'를 붙여 '끄트머리'라고 불러 보자. 이런 삶의 모습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세계로 인도하는 실마리일 뿐이다.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서 있는 한 해의 끄트머리는 또 다른 희망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용기 있는 자들이 절망 가득한 바다의 끄트머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 2019년을 보내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새해로 나아가는 희망의 항해를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