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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산다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4-26 (일) 20:20 조회 : 62

어느 겨울밤,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마침 이웃 마을에 다녀오던 청년들이 이 사람을 발견해 살려냈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사람 하나 다니지 않을 겨울의 깊은 산길이었다. 이 청년들이 그날 이웃 마을에서 열렸던 잔치에 가지 않았다면, 밤늦게까지 흥청거리다 자정이 넘어서야 출발하지 않았다면, 자고 가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그 밤의 추위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을 어른이 한 말씀 하셨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사는 법이다.” 


육법전서에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산다는 조항은 없지만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살 수 있고, 또 지금까지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세상에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를 살린 사람들이다. 부모를 비롯한 형제자매는 물론, 스승과 친구들이 오늘의 내가 살아 있게 한 생명의 은인이다. 어디 그 사람들 뿐이겠는가. 때로는 내 옆에 왔다가 스치듯 지나쳐버린 사람들도 나를 살게 한 사람들이다. 뜻하지 않았던 만남이 소중한 인연이 되었고, 달갑지 않은 만남이 쓰디쓴 인생의 교훈이 되기도 했고, 무심코 던진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의 길이 되기도 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사는 법인데 그 기본적인 법 정신이 훼손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만나서 웃고, 떠들고, 밥 먹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정도 들고 실망하기도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인데 만남이 사라지면서 사는 재미도 함께 없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그나마 말 통하는 친구들과 만나 생활의 곤고함을 달랬는데 그 만남마저 송두리째 빼앗긴 마음의 들판은 메마른 광야가 되었다.


만남을 제한하던 세상은 이제 얼굴마저 가리라고 한다. 얼굴을 가리지 않고 들어섰다가는 음료수 한 잔 얻어먹을 수도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어쩌랴 이렇게 된 세상을 얼마나 더 살아야 할는지도 모르는 게 현실 아닌가.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산다는 법을 내가 먼저 지키자. 전화로 만나든, 소셜미디어를 통해 만나든, 화상 채팅으로 만나든, 아니면 정성으로 꾹꾹 눌러 쓴 손편지로 만나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카톡으로 만나든, 그것도 아니라면 먼발치에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어설프게 만나든 어떻게든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이야말로 만남을 제한하는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을 소홀히 했던 잘못을 깊이 반성하며 다시 만날 그때의 기쁨과 감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만남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사는 법이다!”


<LA중앙일보 칼럼, 2020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