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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추운' 여름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7-31 (금) 10:04 조회 : 128

오래전 한국에서 군대 생활 할 때다. 휴가를 나와 동네 공터에 둘러서서 사람들과 환담을 하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쪽에서 누군가가 장작을 태웠다. 한여름 장작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피해 사람들은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쭉 펴서 한겨울에 몸을 녹이듯 장작불을 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말했다. “군대 가면 여름에도 추위를 타나 보다.”  맞는 말이었다. 꿈많던 청춘은 군대라는 제한된 상황에 얼어붙어 있었다. 한여름 뜨거운 불길을 향해 자연스레 손을 내밀만큼 몸도 마음도 추위에 떨고 있었다.

군에서 제대한 지 수십 년 만에 추운 여름을 다시 맞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에게서 봄을 송두리째 빼앗더니, 이제는 여름마저 꽁꽁 얼어붙게 했다.

추운 여름은 생계의 어려움을 당한 이들은 막막함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새 학기를 맞아야 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어수선함으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나 그 주위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도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채 하루 일을 끝내면 극심한 피로감이라는 서리가 내린다. 일상에서 스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세상을 차갑게 한다. 가까운 이들과 만남을 빼앗긴 이들이 맞는 여름은 냉랭하기만 하다.

한여름 추위는 이토록 매서운데, 무심코 흐르는 세월은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초복(初伏)과 중복(中伏)도 지났으니 한여름임은 틀림없다.

추운 여름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추위를 타는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한여름 햇빛은 찬란하고, 대지는 뜨겁고, 밖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힌다. 여름의 열기는 여전히 꽃망울을 터트린다. 여름 볕은 푸르스레한 과일을 붉게 칠한다. 여름의 태양은 설떠름한 맛을 단맛으로 바꾸는 마술을 부린다. 여름 훈풍에 들녘은 황금빛으로 무르익는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여름이 바꾸어놓은 세상을 이렇게 노래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지나는 여름은 위대한 여름이다. 아무리 우리의 마음이 여름답지 않게 얼어붙었을지라도, 여름은 여전히 온갖 세상을 영글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나는 여름이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맞은 추운 여름을 지난 후에는 더욱더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버틸 힘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믿음을 가지고 외쳐 본다. "이번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다."라고 말이다.

<LA중앙일보 칼럼, 2020년 7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