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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냉장고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17-10-10 (화) 12:07 조회 : 6

말하는 냉장고

 

인공지능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과 대화하는 가전제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음악을 틀라고 하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서는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전화를 걸라고 하면 '지금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친절한 교환원 역할까지 한다. 말하는 밥솥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됐다. 멋모르는 도둑이 한인 이민자 집을 기웃거리다 "취사를 마쳤습니다."라고 밥솥이 큰 소리로 말하는 통에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전해진다.

이번에는 말하는 냉장고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냉장고는 말하는 수준이 밥솥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기능적인 말이 아니라 정서적인 말까지 한다니 놀랄 일이다. 이 냉장고의 이름은 "행복채움 나눔냉장고".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이 운영하는 이 냉장고는 미국의 푸드뱅크(Food Bank)"나 독일의 "푸드쉐어링(Food Sharing)"처럼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와서 마음껏 음식을 가져갈 수 있는 냉장고다. 어른 키만 한 냉장고와 그 옆 선반에는 삼각김밥과 김치 등 먹을 것이 채워져 누구나 꺼내 먹을 수 있고 또 채워 넣을 수도 있다.

얼마 전 냉장고 옆에 쪽지가 하나 붙었다. "제 형편과 가난을 드러내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전 노인도 아니고 겉보기에만 멀쩡한 만성질환자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거든요. 그동안 제가 살아오면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메세지는 '죽어라'였는데, 이 냉장고는 저더로 '살아보라고, 버텨보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죽어라'는 말만 듣던 이에게 "살아보라고! 버텨보라고!"라고 말하는 소리가 꼭 우리에게 하는 말같이 들린다.

이제 사람들이 냉장고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남편이 택배 일을 하는데 항시 이곳에 들러 끼니를 해결한다면서 감사해 합니다. 함께 나눌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동안 감사함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두고갑니다.'라는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음식을 두고 가는 사람도 생겼다.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세요.' 이 냉장고에 격려의 메시지와 함께 쌓인 음식은 사랑으로 숙성되어 다른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냉장고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듣지 못해서 그렇지 엊저녁 먹은 음식도 분명히 말했다. "이 음식 먹고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보라고." 어디 음식뿐인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시동만 거십시오. 오늘도 당신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자리로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걸고 있다. 푸른 하늘에 높이 떠 있는 구름도 말을 걸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손을 흔들며 날아간다. 바람에 산들거리는 풀잎도 빠질 수 없다고 몸을 흔들어댄다. 햇살 좋은 이 아침에 꽃도, 새도, 별도, 달도, 바람도 산도, 돌도 말을 걸어온다. 오늘 하루도 멋지게 "살아보라고! 버텨보라고!"


<LA 중앙일보> 2017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