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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인 정오 기도회 (95)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08-01 (토) 22:34 조회 : 11
“어떤 선글라스를 쓰고 계십니까?”
<전교인 정오 기도회-95>  
2020. 7. 31. (금)

* 찬송가 66장(통 20장) “다 감사드리세”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하와이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만난 교회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에 말이 없고 성실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친척 형을 따라다니며 건축 일을 배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덩치에 맞지 않게 큰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올즈모빌에서 나온 ’88’이라는 모델명을 가진 대형 승용차였습니다. 그 친구가 몰던 차는 승차감도 좋고, 차도 잘 나가고, 폼도 나는데, 좁은 하와이의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마다 애를 먹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운전이 서툰 친구가 큰 차를 몰고 다니기에 아슬아슬했습니다. 

하와이의 여름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던 어느 날 그 친구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날 찾아간 식당은 높은 빌딩 아래층에 있는 식당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큰 차를 빌딩 안에 있는 좁은 주차장에 세워야 하기에 그 친구도 저도 긴장한 채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운전하던 친구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안 보여.” ‘안 보여? 뭐가 안 보인단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당황해하는데 그 친구의 두 번째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이상하지 왜 앞이 안 보이지.” 아니, 운전하는 친구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더 놀란 사람은 옆에 타고 있던 저였습니다. 

주차 빌딩 안이 어두워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순간적으로 저도 소리쳤습니다. “라이트 켜!” 그 친구가 헤드라이트를 켜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래도 안 보여” 이거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앞이 안 보인다고 하는데 차는 스멀스멀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점심은커녕 병원으로 바로 가게 생겼습니다. 제가 운전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갈 요량으로 차부터 세우라고 했습니다. 겨우 차를 세우고 제가 운전석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괜찮아! 이제 보여.” 

알고 보니 너무 환한 바깥에서 어두운 실내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선글라스를 그대로 쓴 채로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세상이 어두컴컴해졌던 것이었습니다. 하도 놀래서 그날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쓴 짙은 색 선글라스가 세상을 안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교훈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검은색 선글라스는 세상을 검게 만들고, 파란색 선글라스는 세상을  온통 푸르름으로 물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돈’이라는 선글라스를 쓰면 온 세상이 돈으로 보이고, 사람도 돈벌이의 도구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불평’이라는 선글라스를 쓰는 순간 우리는 금세 ‘불평 전문가’로 바뀝니다. 여름 햇빛이 센 하와이나 남가주에서는 선글라스가 필수인 것처럼, 신앙인에게도 선글라스가 필요합니다. 

물론, 신앙인이 써야 하는 선글라스는 ‘은혜와 감사”라는 선글라스입니다. ‘은혜와 감사’의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온 세상이 ‘은혜와 감사’로 보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은혜로 여깁니다.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이 쓴 ‘감사’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감사는 곧 믿음이다.” 시인은 감사라는 선글라스를 쓰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감사는/반드시 얻은 후에 하지 않는다/감사는/잃었을 때에도 한다/감사하는 마음은/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 한순간도 순탄하기만 했던 적은 없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이 끊임없이 우리 주위에서 소용돌이를 만들며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좌절도 했고, 잠깐의 성공에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세상을 살다 보니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정도의 나이는 되었습니다. 이제는 원망과 불평, 비교와 후회라는 선글라스를 벗을 때입니다. 그리고, ‘은혜와 감사’라는 선글라스를 써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주는 위협도,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두려움도, 새로운 일상이 가져온 불편함도 ‘은혜와 감사’라는 선글라스 앞에서는 맥을 못 출 것입니다. ‘은혜와 감사’의 선글라스는 세상이 고난이라고 부르는 것을 축복으로 바꾸는 신비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신비를 깨달은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오늘도 바울이 부탁했던 것처럼 ‘감사하는 자’가 되어 보면 어떨까요? ‘은혜와 감사’라는 선글라스를 쓰고,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을 멋지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그 멋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인생길을 달리시는 여러분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 기도 
은혜와 사랑이 참 많으신 하나님.
감사 대신 원망과 불평의 선글라스를 쓰고 사는 저희를 용서하옵소서. 
‘은혜와 감사’의 선글라스를 쓸 때,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은 축복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세상은 신나게 살아가는 소망의 땅이 되게 하옵소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의료진과 관계자들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건강과 지혜도 주시고, 보람과 은총을 누리게 하옵소서. 
믿음의 눈을 열어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고, 구원의 날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감사로 이끄시고, 은혜로 채우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제목 : 
- 감사의 선글라스를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 얼어붙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게 하셔서 따뜻하게 녹이는 인생이 되도록 
- 경제적인 어려움과 육체와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치료와 위로의 손길이 임하도록
- 코로나바이러스로 일상이 멈춘 세상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아는 축복의 기회가 되도록 

* 주기도문으로 기도회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