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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인 정오 기도회 (159)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0-10-17 (토) 18:49 조회 : 8
“대심문관(大審問官)”
<전교인 정오 기도회-159>  
2020. 10. 14.(수)

* 찬송가 143장(통 141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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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스페인은 당시 가장 부유한 나라였고, 또한 누군가에겐 무서운 나라였습니다. 종교재판을 통해 마녀사냥을 당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톨릭 추기경은 대심문관(大審問官)이 되어 유대인을 포함한 무수한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심문관이 내리는 판결에 따라 수백 명의 사람이 종교재판 끝에 화형을 당한 어느 슬픈 여름밤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세빌라’라는 마을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지 1,50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인 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대심문관이었던 추기경은 예수님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을 찾아가서 이교도를 대하듯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심문관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듯 말합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면 예수님, 당신 방식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 방식은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치신 천국 복음을 말합니다. 용서와 사랑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대심문관의 훈계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특별히 세 가지를 원하는데 그것은 기적과 신비와 권위입니다." 기적과 신비와 권위야말로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당하면서 거부한 것들이었습니다. '돌로 떡덩이를 만드는 기적,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때 천사들이 받아주는 신비, 천한 만국과 그 영광을 다스리는 권위'가 그것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심문관은 예수님께 오히려 따지듯 묻습니다. "왜 그때 마귀가 유혹했을 때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때 떡을 만들어 주었으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사람들은 배만 부르면 만족하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했습니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을 때 미동도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을 때,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겠다고 했을 때, 당신은 신비의 주인공이 되길 왜 거부하셨습니까?" 

"마귀에게 절하면 천하만국 영광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것이 혹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까? 하늘의 떡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을 왜 가로막았습니까?"

이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의 명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한 부분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에서 교권에 물든 교회, 세상과 타협한 교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결국 대심문관은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기적과 신비와 권위를 거부한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일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 네가 우리의 일을 방해하러 왔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사는 세상과 교회,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삼엄한 경고장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을 때 베드로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6)

예수님은 지금도 ‘기적과 신비와 권위’를 추구하는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종교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고 계십니다. 아마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셨어도 화형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예수님은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가 예수님인 줄 이내 알아차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좀 이상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가 그리스도라는 걸 이내  알아챘단 말이야.”

도스토옙스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채는 걸 ‘이상한 얘기’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만큼 어두워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밝은 빛으로 빛나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모른 척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은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도 모른 척하며 사는 데 익숙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익숙함을 물리치고 불편하지만,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때로는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 역행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비겁함과 안일함을 물리치고 주님의 길을 따라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셔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좇는 저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세상을 따라 살기에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채지 못하고,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도 모르는 척 살아가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비겁함과 안일함을 내려놓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기적과 신비와 권위’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게 하시고, 섬김과 희생, 사랑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만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세상의 힘에 의지하려는 연약함은 내려놓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 오늘의 기도 제목 : 
-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숨 쉬는 아름다운 세상을 잘 관리해서 다음 세대가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물려 주도록
- 온라인으로 공부해야 하는 자녀들에게 집중력과 지혜를 더해 달라고 
- 오늘부터 시작되는 온라인 심방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해 달라고 

* 주기도문으로 기도회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