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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인 정오 기도회 (231)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1-01-05 (화) 14:45 조회 : 68

천천히 써야 써지는 볼펜처럼

<전교인 정오 기도회-231>  

2021. 1. 4.()


  • 찬송가 425( 217)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속히 하고 말은 천천히 하며 함부로 성내지 마십시오." (야고보서 1:19, 현대인의 성경)


  • ▷▶▷


전에 LA 다운타운에 있는 교우 사무실에 심방을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위해 식당까지 가는데 걸어서 갔습니다. 다운타운이라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운 날씨에 햇볕을 쐬며 다운타운을 걷는 낭만을 즐기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빌딩 사이로 높다란 맑은 하늘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삐 달리는 자동차 사이로 분주한 발걸음들을 앞서 보내며 천천히 걸어서 식당까지 가는 느긋한 걸음 사이로 새로운 세상이 너풀너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짧은 점심시간을 맞추기 위해 분주히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보였습니다. 신호등이 바뀌기도 전에 차도로 내려서는 사람들의 조급함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래처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나온 직장인의 조금은 과장된 웃음, 웃음을 얹어 마음마저 얻으려는 괜한 몸짓도 있었습니다


걸으면서 나누는 인생과 신앙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내려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빨리 걸었으면 내려오다가 중간에 멈췄을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느린 걸음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차로 달리면서는 도저히 없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식사하는 내내 느림은 계속되었습니다. 자리에 앉히고는 한참 만에 음료수 주문을 받더니 다시 한참을 기다리게 하고서야 음식 주문을 받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웨이터가 밉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짜증이 앞섰을 텐데 어차피 마음을 비우고 느린 걸음으로 찾아온 식당에서 바쁜 티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옆에서 큰소리로 빨리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느림을 방해할 뿐이었습니다


천천히 오가는 대화 속에 하나님을 향한 소중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느린 대화에 많은 이야기를 담지는 못했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굉장한 이야기가 오간 것은 아닌데 일상의 대화가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주위의 분주함 속에서 누리는 느림은 시간의 흐름을 붙잡은 같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날 함께 식사한 교우의 느림에 맞추다 보니 저도 같이 느려졌나 봅니다. 그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목사님 고향이 충청도세요?" "아닌데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답을 듣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서울이 고향인데 사람들이 자꾸 충청도가 고향 아니냐고 물어요." 함께 아내는 속으로 웃음이 나서 혼났다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성격이 급한 아내는 느릿느릿 걷는 걸음에 천천히 말씀하시는 그분 때문에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느린 걸음걸이와 느긋한 말투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 하나 꺼낼라치면 배경에서부터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나옵니다. 본론이 나오기까지 서론이 하도 길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칫 대화의 중심을 놓치기에 십상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느긋함을 보여준 분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라고 하면 말도 빠르고 날카롭게 하면서 상대방의 빈틈을 공략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선입관을 깨트리는 따듯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다음날 인도할 새벽 기도회 말씀 준비를 위해 책상에 앉았습니다. 쓰던 볼펜인데 아무리 굴려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속에는 아직 까만색 잉크가 가득한데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 이리저리 빠르게 끌쩍거려도 써지지 않던 볼펜이 어느 순간 속도를 줄여 천천히 쓰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천히 써야 써지는 볼펜이 있는 것처럼 천천히 가야 보이는 세상이 있습니다. 천천히 들어야 들리는 마음의 소리가 있고,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아픔도 있습니다. 천천히 말해야 알아들을 있는 말도 있습니다


2021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신축년소의 해입니다. 소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맡겨진 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가 섬기며 사랑해야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아픈 마음의 소리도 들려 것입니다. 한해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출발하는 우리에게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속히 하고 말은 천천히 하며 함부로 성내지 마십시오." (야고보서 1:19, 현대인의 성경)


* 기도

우리 인생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헛된 분주함 속에 갇혀 지내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숨을 내쉬며 하나님이 주신 햇빛을 만나게 하시고, 나무와 풀과 꽃의 향기를 맡게 하옵소서.

너른 하늘에 마음이 넓어지게 하시고, 땅의 푸근함을 딛고 서게 하옵소서

슬며시 불어오는 바람처럼 산들거리는 성령의 임재를 누리게 하옵소서

소망으로 시작한 ,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기쁨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삶의 자리마다 은혜의 흔적이 남게 하시고, 두려운 마음을 몰아내는 평화도 주옵소서

절망 속에 갇힌 이들의 마음에 주님의 빛이 희망으로 비치게 하옵소서

새해를 맞아 마음에 담은 결단과 다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가정과 세상, 교회와 이웃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해가 되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너그러운 마음도 주시고,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셔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게 하옵소서

기쁨과 감사의 고백이 그치지 않는 해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일의 시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제목 

- 듣기는 속히 하고, 말은 천천히 하며 함부로 성내지 않는 삶을 살게 주시기를 

- 새해 결단과 다짐이 주님의 안에서 지속되기를 

- 절망 속에 갇힌 이들이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빛으로 나오게 주시기를 

-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2021 해가 되기를 


* 주기도문으로 기도회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