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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인 정오 기도회 (270)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1-02-20 (토) 19:51 조회 : 11
“배움의 즐거움”
<전교인 정오 기도회-270>  
2021. 2. 18.(목)

* 찬송가 205장(통 236장) “주 예수 크신 사랑”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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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멈추는 순간 늙기 시작한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무엇이든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늙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에 세상이 갇히면서 만남이 사라짐과 동시에 배움의 길도 막혔습니다. 

그나마 교회에서 모이던 성경 공부도, 컴퓨터 교실도, 문화 교실도 모두 멈춰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가 가진 배움의 열정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 유튜브로, 또 줌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도전을 계속해야 할 때입니다. 

한글의 어원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배우다’라는 말이 ‘배다’에서 왔다고 주장합니다. ‘배다’는 말은 ‘잉태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아이를 배다, 새끼를 밴다고 할 때 씁니다. 즉, ‘배운다’라는 말은 생명을 잉태하였다는 말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배다’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뜻은 ‘스며들다, 녹아든다’ 입니다. 냄새가 배었다는 말은 냄새가 스며들었다는 뜻이고, 양념이 잘 배었다고 하면 양념이 잘 녹아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배움은 생명을 잉태하듯 신비로운 것이고, 삶에 스며들고 녹아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삶에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 등이 모두 배움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의 배움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배움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배움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국어국문학자이자 시인이요 수필가였던 양주동 박사의 "면학의 서"라는 수필이 있습니다. 이글에서 양주동 박사는 독서와 배움의 즐거움을 역설하다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고 하면서 12-3살 때 겪었던 일화로 끝을 맺습니다. 

한문도 독학으로 공부했고, 수학도 혼자 애써서 깨치면서 진리를 연구함이 취미와 즐거움이 되었던 그에게 영어 공부는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리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 문법책에 적힌 ‘삼인칭 단수’라는 말의 뜻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글도 백 번만 읽으면 그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옛말을 의지해서 밤낮 며칠을 읽었지만,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 보통 학교 교장을 찾아 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장 선생님도 모른다고 해서 낙심했는데, 젊은 교사가 그 뜻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때의 감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그날 왕복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杏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 

그런 간절함이 있는 이에게 배움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배움의 애절함이 없는 이에게 배움은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배움의 애절함이란 배움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선 이들만이 누리는 감격이요 그 감격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절실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깨달음이야말로 신앙인만이 누리는 은혜와 감격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말씀을 삶에 채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배움을 머리에만 채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도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머리에 넣어두는 것을 배움이라고 여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배움은 온몸으로 체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배우라는 말은 주님의 멍에를 같이 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배움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4-15)

오늘부터 교회에서 줌(Zoom)을 통해 성경 공부를 시작합니다. 비록 만나서 함께 하는 성경 공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즐거움이 있는 성경 공부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주님의 삶을 닮아가려는 열정이 있는 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오늘도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님을 따르므로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는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게 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배움의 즐거움이 우리의 삶 속에 넘치게 하옵소서. 
늘 배우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되 머리와 지식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그 말씀의 정신이 배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가 맡기신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며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게 하옵소서. 
거친 세상에서 온유한 주님의 마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미움과 증오가 가득한 세상을 사랑으로 품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비교와 질투가 들끓는 세상을 이해와 용서로 섬기게 하옵소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이 잘 이루어지게 하시고, 학교와 교회, 사업체가 일상으로 속히 돌아올 수 있게 하옵소서. 
정치 지도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미 전역에 몰아닥친 폭설과 추위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지키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하나님의 맡기신 지구 환경을 잘 보존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 주게 하시고,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제목 
- 폭설과 추위로 고통당하는 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 우리에게 맡기신 지구의 환경을 잘 보존하고 다음 세대가 마음껏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나가게 되기를
-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삶을 살게 해 주시기를 
- 삶의 모든 부분에서 배움을 멈추지 않게 하셔서 인생을 늘 푸르고 활기차게 살게 해 주시기를

* 주기도문으로 기도회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