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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인 정오 기도회 (302)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1-03-27 (토) 20:04 조회 : 24
“말하면 죽어.”
<전교인 정오 기도회-302>  
2021. 3. 27.(토)

* 찬송가 279장(통 337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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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묵상 글을 통해 어릴 적에 전철 역 앞에서 만났던 차력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두가 다 어수룩했던 시절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기절 쇼를 마치고 나오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제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 기절한 것 아니지?” 차력 쇼의 대장 아저씨가 그 아주머니와 저를 떼어 놓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가 거짓말했겠어요? 얘한테 뭘 그런 걸 다 묻고 그래요.” 제 손을 낚아채서 한쪽으로 끌고 간 아저씨는 그날 저 때문에 대박 난 혈을 누르는 비법이 담긴 허접한 책 한 권을 출연료로 제 손에 쥐여 주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말하면 죽어” 

“움직이면 죽어!”라는 말에 이어 이번에는 "말하면 죽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아저씨로부터 죽인다는 협박을 두 번이나 받고는 냅다 도망쳤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무의식중에 남아 있는 말의 노예가 되어 한동안 살아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조금만 비뚤어져도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뒤에서 해도 큰일 날 것 같았습니다. 어른이 되고서도 ‘말하면 죽어’라는 말을 많이 들어야 했습니다. 조직을 위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은 속으로 삭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민자로 살면서 무시하는 말을 들어도 못 들은 척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말을 가두었습니다. 조금 못마땅해도 괜히 문제 만들 필요가 뭐 있냐고 하면서 못 본 척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면서 적당히 넘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한 차별과 증오 범죄는 그런 우리가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산책하는 데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폭언을 들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한 미망인에게 ‘우리가 참아내야 할 아시안이 하나 줄었다. 조심해라! 짐 싸서 네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잔인한 내용이 담긴 편지가 배달되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오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여전히 침묵을 강요합니다. 불의를 보고도 참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절대 불의를 그냥 두고 보지 않으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상과 의자를 둘러 엎으시기도 했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을 향해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발과 발목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붙잡았지만, 너무도 분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을 부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9-20)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사는 삶입니다. 세상은 여전의 우리의 입을 다물라고 합니다. ‘말하면 죽어!’라고 협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의 고백처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죄는 우리를 향해 ‘말하면 죽어!’라고 협박합니다. 작은 이익 때문에 의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입에는 재갈이 채워집니다. 낙심은 우리에게서 웃음과 말을 빼앗아 버립니다. 걱정과 근심의 노예가 되어 끌려가다 보면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지고 맙니다. 

그럴 때 해야 하는 말이 ‘회개’의 말입니다. ‘감사’와 ‘찬양’의 말입니다. 이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의 사슬을 끊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음을 회복시키는 은혜가 있습니다. ‘말하면 죽어!’라고 협박하는 세상을 향해 회개와 감사, 그리고 찬양의 목소리를 한껏 높이며 살아갑시다. 

* 기도
우리의 찬양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 
죄와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은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합니다. 
낙심과 절망의 그림자에 드리운 세상은 사람들과 만남과 대화를 단절시킵니다. 
그럴 때일수록 주님을 향한 회개와 찬양을 그치지 않게 하옵소서. 
감사의 고백을 통해 삶의 회복되게 하옵소서. 
작은 이익에 정의를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무너지는 세상을 지켜 주시고, 차별과 증오가 넘치는 세상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덮어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이 피부색 때문에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의 작은 힘과 기도를 보태게 하옵소서. 
선교사님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선교지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로하시고 길을 열어 주옵소서. 
학교에 가야 하는 학생들, 교직원들과 선생님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옵소서.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옵소서. 
지치지 않게 하시고, 이겨 낼 힘과 용기를 허락하옵소서. 
돌보는 가족들에게 주님의 위로를 부어 주옵소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채,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속히 다시 만날 수 있는 때가 오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제목 
-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셔서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해 주시기를
- 감사와 찬양을 통해 절망과 낙심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 선교사님들을 안전하게 지키시고 선교지마다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게 해 주시기를
- 문을 연 학교에서 배우로 가르치는 학생, 교직원 선생님들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 주기도문으로 기도회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