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705건, 최근 0 건
   

전교인 정오 기도회 (307)

글쓴이 : LA연합감리교회 날짜 : 2021-04-03 (토) 21:15 조회 : 12
“정죄에서 용서로”
<전교인 정오 기도회-307>  
2021. 4. 2.(금)

* 찬송가 151장(통 138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 ▶▷ ▶▷ ▶▷ ▶▷ ▶▷ 

'A, B, C’는 서로 다릅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쓰이는 곳도 다릅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싸우기도 무척 싸웠습니다. 그 옆 마을에는 'X, Y, Z’가 살았습니다. ABC의 자리에서 XYZ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들도 그 다름을 극복하지 못해서 다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ABC’와 ‘XYZ'가 어느 날 하나가 되었습니다. 알파벳이라고 불렸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다르다고 아우성을 쳐도, 서로의 다른 점을 알리려고 애써도 사람들은 모두 같은 알파벳이라고 여길 뿐이었습니다. 

‘사과, 수박, 배, 복숭아’는 서로 다릅니다.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다르고, 향도 다릅니다. 나무도 다르고, 키우는 방법도 다르고, 나오는 시기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이들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것들이 ‘과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입니다. 

과일과 채소는 서로 같지 않다고 싸웠습니다. 쌀은 쌀대로, 콩은 콩대로, 꽃은 꽃대로, 아름드리나무는 나무대로 나는 너와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식물’이라는 이름 앞에 어쩔 수 없이 묶였기 때문입니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 독수리는 생김새는 물론 사는 곳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릅니다. 나는 너와 절대 같지 않다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그들을 향해 ‘동물’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모두 같은 부류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고향이 다르고, 학교가 다릅니다. 하는 일도 다르고, 미국에 온 시기도 다르고…… 하나같이 같은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우리를 가족으로 묶고, 이민 1세로 묶고, 교회 다니는 교인이라고 묶고는 한통속이라고 여깁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다르다고 주장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차이점을 드러내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요즘이야 기회가 많지 않지만, 한국이나 다른 주로 가는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탈 때가 있습니다. 육중한 쇳덩이가 활주로를 달리다 공중으로 힘차게 날아오를 때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설렘과 함께 마음도 따라 날아오릅니다.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오르면 오를수록 땅에 있는 것들이 작아 보입니다. 장난감처럼 작아진 자동차가 직선으로 늘어선 모습이 아련해질 때쯤이면 건물도 작은 상자 크기로 변합니다. 크기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높낮이도 평준화가 됩니다. 

땅에 있을 때는 그렇게 높아 보이던 으리으리한 빌딩이나 나지막한 건물이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 고만고만합니다. 그럴 때면 세상에서 조금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안달하던 모습이 덧없이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세상은 크기를 따지고, 높낮이를 따집니다. 그런데 하늘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 차이가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너와 다르다고 정죄합니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보면 그 차이가 별것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볼 때 다 고만고만합니다. 아무리 거룩하다고 해도, 누군가를 향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예수님 보시기에는 다 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우리를 정죄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보시면서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는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작은 차이를 드러내 비판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어 정죄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옆에 있는 사람의 나와 다른 모습에 실망하기보다, 비슷한 모습을 보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입니다. 내 눈에 못마땅하게 보이는 모습을 비판하기에 앞서 역시 그런 모습으로 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하늘 가는 길에 만나는 십자가가 안내하는 대로 정죄함을 넘어서 용서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갑시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서로의 다른 점을 들추고, 비판하고 정죄하며 사는 저희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용서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으시므로 우리와 같아지시고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용서하며 살게 하옵소서.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 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심판관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폭력이 멈춰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병중에 있는 성도들을 찾아가셔서 위로와 치유의 은총을 부어 주옵소서.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옵소서.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앗아가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제목 
- 비판과 정죄의 마음을 내려놓고 용서하며 살게 해 주시기를
- 마음의 분노를 조절하게 하시고, 총기로 인한 사고를 멈춰 주시기를 
- 육신의 질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주님의 손으로 고쳐 주시기를
- 선교사님들을 안전과 건강으로 지키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해 주시기를 

* 주기도문으로 기도회를 마칩니다.